<혼자만의 방>

by hotlionheart

글루틴 아홉 번째 주제는 볶음밥이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가끔 남편이 주말 아침에 볶음밥을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특히 아이 밥 위에는 달걀을 풀어 지져서 만든 하트 모양을 얹어주고, 그 위에 케쳡으로 눈코입을 만들어 꾸며줬었다.


그 이후로는 남편의 볶음밥을 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즈음에 친정 부모님과 합가를 하면서, 모든 가사노동은 나의 책임과 의무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아쉽기도 하고, 아이 학교 문제 등으로 부모님의 경제적인 수혜를 받으며 합가를 했기에, 내 머릿속은 온통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남편 새벽밥을 차리고 나면, 그다음으로 출근하는 아빠의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한동안 귀리 등 각종 수퍼 곡물을 불려 갈아 만들어야 하는 귀리죽을 원하셔서 이틀에 한 번 꼴로 죽을 만들어 드렸다. 그다음은 학교 가는 딸을 위한 마지막 아침 밥상을 차렸고, 매일 산처럼 쌓여있는 설거지와 집 정리로 오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얼마 안 있다가 손목이 고장이 나서 식기세척기를 들이게 되어 그나마 일손이 줄게 된 게 다행이었다.


주말이 되면 외식도 배달음식도 싫어하시는 부모님 덕에, 그야말로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차리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나면 또 저녁을 차려야 됐었는데, 이게 보통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매 끼니마다 한 두 가지씩은 새로운 메뉴를 상에 올려야 되니, 주말에는 오후 다섯 시부터 부담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처럼 손이 빨라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스타일도 아니고, 해본 음식도 할 때마다 레서피를 한 번씩은 숙지하고 시작하는 나였기에 대가족 살림살이가 나에게는 버겁기만 했었다.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면서 엄마와의 사이도 많이 틀어지고, 온 가족이 분열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작년 여름에 내가 용단을 내려 부모님이 먼저 사시던 집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이 집을 팔아서 부모님께 빌린 돈도 갚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부동산 경기 하강과 더불어 고금리로 인해 아예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어영부영 눌러앉아 살고 있다.


남는 방을 핑계로 25년 만에 내 방도 꾸미게 되어 남편과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부딪히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각자의 생활리듬과 스케쥴에 따라 살되, 가족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면서 살게 되니, 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내 방에서 넷플릭스의 폭력적인 영화 소음의 방해 없이 조용히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내가 관심 있는 유튜브 보며 낄낄대고. 내 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어떤 때는 제일 행복하게 느껴진다.


또, 주부는 혼자만의 공간이 먼저 있어야 혼자만의 시간이 확보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늘 피곤한 상태였는데, 신경 쓸 사람 수 자체가 줄어드니 죄송스럽지만, 이리 한갓질 수가 없다.


이런 황금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방이 있는 지금을 충분히 즐겨보리라.



#글루틴 #팀라이트

매거진의 이전글<소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