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틴 숙제를 하면서 글의 맥이 끊겨 잠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작은 알갱이 눈이 사선으로 비스듬히 빠른 속도로 내리붓고 있었다.
첫눈이다!
순간적으로 ‘내 손톱에 봉숭아물들인 거 없는데 어쩌지?’ 하다가 ‘나 유부녀지~’ 하면서 혼자 웃고 있는데, 살짝 내가 나를 비웃는 느낌이 든다.
그 옛날에 사랑하던 구 남친(현 남편)을 첫눈 오는 날에, 차도 없던 시절 추위에 벌벌 떨면서 명동 바닥에서 기다리던 장면이 떠 오른다.
지금은 눈 온다고 어디 약속 만들어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은 안 들고, 집에서 자고 있는 딸래미 맛있는 거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비계가 적당히 붙은 목심 두 덩어리를 사서 보쌈을 보글보글 삶아 새우젓에 찍어 노란 알배추에 싸 먹게 해 줘야겠다.
첫눈 오는 날 보쌈 끓는 소리가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