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스냅스릴러 소설집 "인간교" 수록 작품
학회가 열리는 회장이 웅성거린다. 학회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다.
모두 이우석 박사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 박사는 양자역학의 권위자이다. 이우석 박사는 전부터, 이번 학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발명품을 발표하겠다고 단언했었다. 바로 오늘이 그 발표날인 것이다.
박사가 무대 위로 걸어 올라왔다. 박사가 나오자 웅성거리던 회장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박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제가 개발한 혁명적인 기계를 소개할까 합니다.”
괴상하고 거대한 기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기계입니다.”
이 믿기지 않는 발언에 학회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타임머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우석 박사는 소란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말했다.
“아닙니다. 타임머신을 만들어도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미래를 바꾸는 건 여러 가지 역설 때문에 불가능하다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치는 평행우주이론을 응용했습니다. 원하는 과거의 일이 일어난, 지금 이 시간과 동일한 시간대의 평행우주로 보내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 기상천외한 기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순간의 침묵도 잠시, 기자들은 많은 궁금증이 가득 찬 머리로 박사에게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냈다.
이 박사는 기자들을 피해, 급하게 기계와 함께 학회장을 빠져나와, 뒤에 있는 고층건물을 올라갔다.
거기엔 한 남자가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한국에서 대성공하고, 전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 당연시 여겨졌던 SL그룹의 주재용 회장이 초조하게 소파에 앉아 박사를 맞이했다.
SL그룹은 급속도로 성장한 회사다. 하지만 연이은 투자 실패와 신제품에서 일어난 불량품 사건, 경영 실패로 지금은 파산직전까지 가있다.
주재용 회장은 침울하지만 기대감이 차있는 눈으로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과거를 바꾸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단 말씀이죠?”
이 박사는 이 질문에 아주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
“당연합니다. 사람의 인생에는 여러 가지 분기점이 존재합니다. 그 분기점의 수만큼 수많은 평행우주가 존재하죠. 회장님을 회장님이 원하시는 과거를 가진 평행우주로 보낼 겁니다. 날짜나 시간은 현시점이랑 같을 겁니다. 뭐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계약섭니다.”
박사는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거기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써져 있었다.
”아, 회장님이 다른 세계로 가시자마자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박사는 중요한 걸 잊었다는 듯 덧붙였다.
“가자마자 바로 그 세계의 자신을 죽이세요.”
회장은 놀란 듯 말했다.
“네? 저를 죽이라고요.”
“맞습니다. 죽이세요. 이 장치는 사람을 보내기만 합니다. 양자 텔레포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쪽세계에는 회장님이 2명이 되죠.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바로 죽이세요. 만약 회장님이 안 죽이시면 그쪽 세계의 자신이 회장님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죽이고 적당히 처리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DNA, 지문까지 완벽하게 같으니 뒤처리는 편할 겁니다.”
“저보고 살인을 하라는 말씀이군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의 눈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회장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접힌 듯 보였다.
하지만 몇십 분 후 만에 다시 눈에 빛이 돌아왔다.
“저는 저의 실패를 되돌리고 싶습니다. 저의 전 재산을 걸어서라도 말이죠. “
회장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때였다. 어떤 남자가 난입해 박사의 목에 칼을 꼽았다. 박사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박사 자신이었다.
칼을 든 박사는 피로 범벅이 된 칼을 내려놓으며 회장을 보고 말했다.
“음… 어디까지 얘기했죠?”
박사는 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살짝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죠. 감사합니다. 이제 원하는 과거와 미래를 손에 넣으세요.”
놀란 것도 잠시, 회장은 씁쓸한 미소로 말했다.
“저도 저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제가 살 확률은 얼마입니까?”
“일어나지 않은 이상,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죽음과 삶이 공존한 상태로 살아가겠죠.”
“허허, 저는 그저 고양이로군요, 슈뢰딩거의.”
회장은 기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박사는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양자역학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