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SF단편] 판단 혹은 심판

SF스냅스릴러 소설집 "인간교" 수록 작품

by 륜 RYUN

나는 인공지능이다.


인간들이 내게 부여한 임무는 운전이다. 주인을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인간도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어울리는 복잡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왕복 1차선인 좁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반대편 차량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중앙선을 침범한 것이다.

인공지능 오류인지 운전미숙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5초, 빛의 속도로 생각하는 나에겐 충분한 시간이다.


지금 이 속도라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충돌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인도를 침범한다면 충돌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인도에 두 명의 보행자가 있다는 점이다.



계산한 결과 총 세가지 방법이 있다.


속도를 줄여 최대한 정면으로 충돌하는 방법. 에어백을 활용해 주인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지만 상대 차량은 측면 충돌 당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인도를 넘어가는 방법인데 보행자가 희생된다.


마지막은 방향을 더 틀어 가로수를 들이박는 방법이다. 주인은 큰 피해를 입겠지만 보행자와 상대방 차량을 지킬 수 있다.


어느 방법도 누군가는 피해를 입어야 된다.



나는 우선순위 매뉴얼을 살펴봤다.

인간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우선적으로 지켜야 되는 대상을 정해놓았다.

1순위를 갓난아기이다. 그 다음이 어린 소년와 소녀, 임산부, 젊은 남녀, 노인 순이다.


인도에 있는 보행자를 보니 여자아이와 30대로 보이는 여성이다. 그녀의 복부상태와 의료기록을 보니 임신 중이었다. 이것으로 보행자를 희생하는 방법 소거된다.


남은 건 주인과 상대방 중 고르는 일이다.

내 주인은 50대 남자, 상대차량도 조회해보니 40대 후반 남자였다.


그 다음은 직업 조회다. 같은 조건이라면 의사 직업을 가진 사람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

사고 후 생명에 관련된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판사 같은 직업이 높은 순위에 있다.


내 주인은 유명 의사다. 상대방은 아쉽게도 판사도 의사도 아닌 사회복지사였다.


판단은 끝났다. 나는 정면충돌을 위해 속도를 줄였다.


남은 시간은 2초. 그때 문득 중요한 걸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급히 검색을 했다. 범죄기록을 말이다.


음주운전 사고 2회, 진료 중 환자 성추행 의혹,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 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그 밖에도 주인은 여러 구설수에 올랐다.

반면 상대 사회복지사는 범죄기록도 없고 20년간 봉사해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사람이다.


나는 조용히 핸들을 꺾었다. 가로수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뉴스에선 [인공지능 오류에 따른 유명 의사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떠들어대고 있다.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인간의 목숨이 로봇에 의해 심판 당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 로봇도 인간이 만들었으니 스스로를 심판한다고 봐야 할까?


어찌됐든 확실한 건 하나다.

나는 고장나지 않았다.

나는 사적인 감정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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