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스냅스릴러 소설집 "인간교" 수록 작품
덜덜 떨리는 연필 끝은 오늘도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방황만 했다.
상섭은 연필을 내려놓고 빈 원고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상섭이 처음부터 글을 못썼던 건 아니다. 그는 촉망 받는 신인 작가였다.
그는 어느 유명 출판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언론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작가라며 극찬하는 기사를 쏟아냈고,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찬란했던 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후속작들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몰락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기대와 시샘으로 데뷔한 만큼 주위사람들의 실망은 컸다. 그의 편이었던 언론과 팬들도 악평과 비난을 하며 등을 돌렸다.
출판사 편집장은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인 줄 알라며 엄포를 놓았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상섭이 들고 간 원고들을 줄줄이 퇴짜 놓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작가가 이 정도 밖에 안되냐 라는 비아냥 섞인 독설도 가차없이 내뱉었다.
그렇게 상섭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음에 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갔고 결국 깨진 거울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젠 연필만 잡아도 손이 떨리고 머리가 새하얘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느덧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빛도 붉게 물들었다. 멍하니 떨리는 손을 주무르던 상섭은 용기를 내어 다시 연필을 잡고 원고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컴퓨터보다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을 선호했다. 글 쓸 때 손에 전해져 오는 흑연이 갈리는 진동과 그 소리, 원고지의 감촉과 붉은 줄은 그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 원고지는 상섭의 마음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상섭은 연필 집어 던지고 머리를 감쌌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 좀 열어봐”
상섭은 익숙한 목소리에 문을 열었다. 용운이 찾아온 것이다.
“선배, 무슨 일이세요.”
상섭은 기쁨 반, 근심 반으로 용운을 맞이했다.
용운은 대학교 때 같은 소설 동아리 선배였다. 글 솜씨가 워낙 뛰어나, 대학교 때부터 이미 유명했다. 상섭은 그런 그를 늘 동경해왔다.
“소문도 들었고, 전화도 계속 안받길래 찾아와봤지.”
“뭐 글 쓰는 사람 사는 게 그렇죠. 하하”
상섭은 구겨진 원고지가 널브러진 방이 부끄러운 듯 그것들을 발로 대충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글, 안 써지는 거야?”
어색하게 웃는 상섭에게 용운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나도 그랬어. 다 마음 문제야. 편하게 생각하면 글이 잘 써질 거야.”
용운은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상섭도 귀담아 들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알지도 못하면서' 라며 무시했겠지만, 그의 조언은 달랐다.
용운도 상섭과 같은 슬럼프를 겪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용운은 sf소설 '스페이스 보헤미안'을 비롯해 내는 책 마다 줄줄이 히트 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감은 모두 그에게 부담으로 다가왔고 글을 쓸 수가 없어졌다.
그러다 용운은 몇 달간 종적을 감췄다.
자살한 거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지만 그는 다시 나타나 요즘 최고 히트를 치고 있는 소설인 '인면어'를 발표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한 선배의 말을 상섭이 무시할 리 없었다.
한동안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럼 난 이만 갈게. 힘내.”
용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덕분에 힘이 많이 나요.”
상섭은 보다 밝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깊은 어둠이 있음을 용운은 알 수 있었다. 용운은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지면 여기 한번 가봐.”
상섭은 명함 하나를 건네 받았다.
거기엔 예술가 전문 정신병원이라 적혀있었다.
상섭은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용운을 배웅했다.
용운의 방문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는지 그날 밤은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에 들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오늘은 왠지 글을 쓸 수 있을 거 같은 마음에 상섭은 연필을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을 참아가며 몇 자 적어보았지만, 말 그대로 글자 일뿐이었다. 상섭은 원고지를 꾸겨 던지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연민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재능이 없어 그만둔다는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받은 공모전 대상이 도망갈 길마저 막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그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글도 못쓰는 작가는 존재할 가치가 없었다.
상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불면증으로 처방 받은 대량의 수면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수면제를 향해 뻗었다. 그러다 책상 위에 놓여진 명함을 보게 되었다.
최근까지 상섭은 병원을 다녔다. 정신병원에서 이런저런 상담을 받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완치가 된 선배가 다녔던 곳이라면 뭔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그의 머리에 가득 차 올랐다.
그는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며 명함에 적힌 곳으로 향했다.
다른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숲 속에 병원 하나가 성처럼 서있다. 상섭은 고급스럽고 거대한 병원에 들어섰다. 하얀 피부의 남자 안내원이 멋진 미소로 그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예술가 전문 정신병원입니다. 어떻게 오셨죠?”
“저 소설가 한용운 씨의 소개로 왔습니다만……”
안내원이 미소를 유지한 채, 인적 사항을 적는 종이를 건넸다.
“인적 사항 작성 끝나시면 뒷장에 계약서 읽어 보시고, 서명하시면 바로 치료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상섭은 대충 계약서를 읽어보았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비밀로 할 것이나 개인정보 절대 보호 같은 사항들이 적혀있었다.
상섭이 서명까지 마치자 안내원은 상섭의 소지품을 모두 수거한 후, 병원 안 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곳엔 사방이 유리로 된 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각 유리 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화가부터 시작해 소설가, 가수, 심지어는 유명 연주가도 있었다.
“이 쪽 방입니다. 방으로 들어오세요”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치료실이라기보단 감옥에 가까웠다. 육중한 철문에는 배식구로 보이는 구멍이 있었고, 방에는 조그만 화장실까지 구비되어있었다.
상섭이 방에 들어가자 마자, 밖에서 안내원이 문을 닫았다.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잠긴 듯했다.
“설명 드리겠습니다. 한달 안에 작품을 내세요. 아니면 당신은 죽습니다.”
“네? 뭐라고요?”
상섭은 당황했다.
안내원은 변함없는 말투로 말했다.
“예술가들의 삶에서 언제 최고의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죽기 직전 입니다. 유작이야 말로 예술가의 최고의 작품이죠. 한달 안에 저희 평가단이 만족할만한 작품을 못 내시면 방 안 전체에 독이 퍼질 겁니다. 저희 평가단은 모두 세계적인 평론가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냉정하고 정확한 평가가 내려질 겁니다."
“거짓말이죠? 농담도 참.”
상섭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가 입에 거품을 문채 실려나가는 것이 보였다.
안내원이 하는 말이 모두 진심이라고 느껴진 순간 상섭은 충격에 빠져 할말을 잃었다. 그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소리쳤다.
“당신들 이런 짓을 해도 무사할거 같아?”
“저 독은 마비를 먼저 일으킵니다. 그리고 몇 분 후 사망하죠. 사망 후에 독은 체내에서 사라지고요.
치료 중 정신착란으로 병원을 탈출해 근처 숲을 헤매다 객사. 아니면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어떤 것도 문제될게 없습니다.”
절박해진 상섭은 문뜩 생각난 듯 말을 했다.
“아!, 아직 돈을 안 냈습니다. 제가 죽으면 돈을 못 받잖습니까. 당신들한테 손해에요.”
“아닙니다. 계약서에 적혀 있었죠? 만약 이 병원 입원 중 사망 시에 이곳에서 만든 작품은 모두 저희 소유가 되다고 말이죠. 표정을 보니 계약서 꼼꼼히 안 읽어보신 거 같네요. 작가님이 남긴 작품을 저희가 유작으로 되팔 겁니다. 유작의 가치는 생각보다 큽니다.”
아찔했다. 상섭은 식은 땀을 닦으며 물었다.
“그럼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티면요?”
“작가님 자유지만 예정대로 한달 후 죽음을 맞이하겠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예술가가 작품 하나 못 남기고 죽는 것만큼 비참한 건 없죠. 그래서 결국 다들 열심히 작품활동 하시더라고요.”
안내원은 한결 같은 미소를 지으면 말을 이었다.
“예술가들이 이 곳을 뭐라고 부르는 지 알고 계십니까? 유작 공장이라 부릅니다. 정말 어울리는 별명이죠?
한용운 작가님 소개로 오셨다고요? 그분 정말 대단해요. 일주일 남기고 그런 최고의 작품을 쓰시다니 말이죠”
상섭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안내원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이번 작품이 유작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빠른 퇴원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