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스냅스릴러 소설집 "인간교" 수록 작품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다행히 쥐인가 보다. 나는 엉망이 된 편의점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이런 생활도 익숙하다. 200일 넘게 이렇게 살았으니 말이다.
나는 쓰레기 더미에 기대어 앉아 그날을 회상했다.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 밖이 소란스러워서 무슨 일인가 하고 티비를 켰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수라장이 된 시내가 보였다.
나라에선 좀비 바이러스라고 떠들어대면서
내가 사는 곳을 비롯해 3개의 동을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아버렸다.
그리곤 물, 전기 모든걸 끊었고 지원물자 조차 없었다.
사람들이 항의 하기 위해 장벽으로 몰려들었지만 돌아오는 건 총알세례뿐이었다.
나라가 미쳤다고 욕하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나는 가족이 없어서 다행이다. 내 몸만 신경 쓰면 되니깐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식량과 물을 구하러 매일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른 생존자도 찾아보았지만 생존자는 없는 듯했다.
나는 감염 당하지 않기 위해 온몸을 천으로 칭칭 감고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좀비 바이러스는 공기 중 감염은 없는 거 같다는 것이다. 접촉으로만 감염되는 듯 했다.
나는 회상을 멈추고 짐을 챙겨 편의점을 나섰다. 황폐해진 거리에는 좀비들이 천천히 기어 나오고 있었다.좀비들은 운동신경이 둔해서 조심만 하면 잡힐 일은 없다.
나는 생존자, 무엇보다 식량과 물을 찾으러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좀비 하나가 나의 길을 막으며 나를 향해서 웅얼거리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우……어….”
나는 파이프로 그 좀비의 머리를 내려쳤다. 좀비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좀비의 움직임이 멈추자, 나는 주의를 살펴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좀비는 아닌 거 같았다.
방독면을 쓰고 하얀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권총을 겨누며 다가왔다.
“뭐야, 생존자잖아.” 그 사람이 소리쳤다.
“당신도 생존자입니까?” 나는 물었다.
“어..좀 다릅니다. 조사원이라고 불러주세요. 아무튼 생존자를 만나다니 기적이군요.”
그는 뭔가 뜸들이면서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방금 쓰러졌던 좀비가 조사원을 발목을 물었다.
나는 그 좀비를 뿌리치고 그를 근처 폐 건물로 데려갔다.
나는 조사원을 죽일까, 그냥 도망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조사원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 조사원은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자신에게 주사했다.
“뭐야, 백신이 만들어 졌어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네, 백신은 오래 전에 만들어 졌습니다.”
“뭐라고요? 그럼 왜 안 나눠줍니까”
“이 백신은 이미 첫 환자가 나왔을 때 만들어졌죠.
하지만 만들 수 있는 수량이 극소수라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협상해서 결정했습니다.
몇몇 높으신 분들이나 부자들에게 팔기로요. 그리고 그 사실을 숨기기로 말이죠.”
나는 분노로 그 놈을 노려봤다.
“그리고 애초에 좀비 바이러스도 아닙니다. 신경 병이죠.
증상은 신경이 마비돼서 운동 능력이 저하되고 피부가 썩어가며, 지능이 낮아지죠. 하지만 엄연히 사람입니다.”
“그럼 왜 좀비 바이러스 라고 했는데!”
나는 화를 주체 못하고 소리쳤다.
“그래야 격리시킬 명분이 서거든요. 격리시켜서 다 죽으면 다시 도시를 재건할 생각이었죠.
제가 여기 온 것도 감염되어 모두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새끼가”
나는 그 놈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 놈의 권총을 손에 쥐었다.
그 놈은 새삼스럽게 왜 이러냐는 듯 말을 이었다.
“당신도 알고 있었잖아요”
나는 손을 놓았다.
“공기 중 감염도 없는데 이 병이 왜 빨리 퍼진 줄 아십니까? 바로 감정 때문이죠.
감염된 가족이나 친구, 혹은 모르는 누군가를 선의로 도우려다,
아파서 몸부림 치는 환자한테 할퀴어지고 물리는 거죠.
당신이 지금까지 생존한 이유가 뭔지 아시겠죠?”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다가왔던 좀비를 떠올렸다.
“배….고…..파, 도….와….줘” 라고 말하는 좀비를, 아니 사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식량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라고 자기합리화 해왔던 것이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권총을 조사원에게 겨눴다.
폐 건물에서 두발 총성이 몇 분 간격으로 울려 퍼졌다. 감정 없는 두 좀비가 폐 건물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 격리구역엔 인간들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