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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경 Nov 01. 2017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현실.

-혼밥, 혼술, 혼자 사는 가구 등등..

요즘의 트렌드를 보고 있자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혼밥, 혼술, 1인 가구 증가, 나 혼자 산다 등등. 솔직히 트렌드(유행)를 꼭 따라야 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우리네 모습들을 보다 보면 마치 의무인양 너도나도 하고 있다는 것이 어딘가 슬퍼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민낯 같은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혼자서 하는 무엇', 나 혼자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뭘까?를 생각하고 간접적으로 부주키는 여론이나 방송들도 조금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관계를 통해 공동체를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소통하면서 도움을 주고받고 그러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귀담아듣고서 공감하고 치유가 언어로 그 사람을 도와주고 하는 것이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요즘의 세태는 핵가족화도 모자라서 점점 개인주의화되어가는 실정이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진정으로 내가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주변 사람들과 얼마나 관계에 충실한지를. 그리고 그 관계가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는 짧은 고도의 성장 기간 동안 가난을 필사적으로 극복하고자 기적과 같이 이뤄냈지만, 그 저변에는 오직 성장만이 답이다 하면서 발견보다는 발전에만 거의 목을 매다시피 달려왔다. 확실히 생활수준이나 경제적인 풍요는 참 괜찮은 수준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정작 그 발전에 가려져 내 삶 가운데서 위대한(노벨상 따위를 탈 수 있는 업적이 아니다) 발견-예를 들면, 상처 입은 가족들의 치유,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 잊고 있었던 나의 새로운 발견과 만남 등-을 잘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요사이 들어 강연 전문 프로그램에서 인문학 혹은 심리학 강연에서 나를 만나고 상처를 보듬고, 소통을 다시 하라는 주제로 강연을 듣다 보면 우리네가 얼마나 숨 가쁘게 달려오기만 하고 주변을 안 돌아봤구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 와서 진작에 해야 할 것을 우리가 듣고 깨닫고 있는 걸 보면 착잡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알 수 있게 된 것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잇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뜻이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임에도 그것을 망각한 것처럼 서로들 각자의 삶에 너무나 집중해있고 그것이 점점 고착화되어 가는 현실이다.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고, 소통이란 단어가 한 때 트렌드가 되었었지만 정작 우리네의 삶에서 소통이 얼마나 잘 이루어져 왔는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물음표에 가깝다고 봐도 된다. 그만큼 소통하지 못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 초 탄핵으로 시끌했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주제 또한 전 정부와 국민과의 소통 문제였다. 국민들은 대화하고자 하는 대통령을 원했지 칩거하면서 보여주기 식 대외 활동할 때에만 나타나는 대통령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소셜미디어(우리나라식 표현으로 SNS)만 봐도 알 수 있다. 각자 글과 사진을 올리지만 뭔가 사람들과의 소통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자기표현에 더 가까운 걸 알 수 있다. 오늘 여기 와서 이걸 먹었어요 하는 맛집 인증숏 혹은 어디에서 뭘 하며 누구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하는 요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비슷한 패턴의 피드를 보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통의 도구인가 하면서 조금씩 지쳐 떠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우리네는 너무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다. 물론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 건 필자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그걸 안다면 내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은 최소한 내가 아껴주며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요새 고등학생 혹은 대학 초년생들의 모임이나 개인 만남들을 카페에서 보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스마트폰을 각자 만지며 키득거리고 있다. 게다가 이어폰마저 낀 채.. 그럴 거면 왜 서로 같이 있고 만날까 하는 필자의 생각이 괜히 드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같이 함께하고 교제하고 소통하는 것은 서로의 대화가 교류하면서 이뤄지는 과정들이다. 그런 것도 없는 채, 상대가 내 기분을 몰라줘서 기분이 나쁘다거나, 저 사람은 소을 알 수가 없어하는 식의 오판은 정말이지 착각 중의 대 착각이다. 그러기 전에 상대의 기분이 왜 나쁜지부터 물어보는 게 순서가 아니냐는 이야기는 당연한 게 아닌가.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서로 각자도생의 길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요즈음, 무조건 같이 있자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는 길은 내 ㅈ변을 좀 돌아보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며 챙겨줘야 할 사람들을 한 번씩은 챙겨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의 이야기를 그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게 조금이나마 이 팍팍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조금씩 실행해보자. 그러면 내 삶이 조금씩 윤택해지지 않을까? 이 글을 읽은 모두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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