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동네한바퀴(5)

당신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by 양갱


밖에서는 쌀쌀한 바람이 느껴졌다. 유럽의 습기 섞인 추위는 한국의 건조한 추위와는 느낌이 달랐다. 더 춥고, 더 파고드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밖에 나와 햇빛을 받고 있다! 오늘이 점점 기대되기 시작한다. 태양은 더 높이 올라 주위가 환해졌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사람들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뻐근한 몸을 풀었다.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관찰했다. 지나가던 청소부 분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 발레리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차르트 가 거리 표지판. 모차르트의 생몰년과 함께 '오스트리아인 작곡가'라고 써 있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발레리씨에게서는 뭔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다 이럴까? 라는 희망적인 확증 편향이 머리를 스친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최대한 낭만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려는 것 같다.


대문을 나섰다. 내가 있는 이 거리는 '모차르트 애비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거리이다. 그런데 모차르트와 무슨 대단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름만 갖다 붙였다는 것 같다.




발레리씨를 따라 길을 내려간다. 치즈 가게에서는 난생 처음 맡아보는 치즈 향기가 은은하게 났다. 세상에, 치즈만 파는 가게가 있다니! 내가 진짜 유럽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정육점은 친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향신료 섞은 버터가 든 바로 달팽이(Escargot)와 처음 보는 가금류들을 볼 수 있었다. 케밥을 파는 패스트푸드점을 지나가면서는 자기 아들이 이곳 음식을 좋아해 몇 번이고 사 먹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또 여기는 약국(Pharmacie)들이 많은데 노인이 많이 살기 때문에 그렇다는 농담도 하셨다. 그렇게 프랜차이즈 슈퍼마켓, 파리시 장례 서비스 사무실, 리큐어 스토어 등등 있을 거 다 있는, 그러나 처음 보는 가게들의 거리를 지나가며 가만히 설명을 듣고만 있었다.



신기했던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겨울 파리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슈퍼마켓 앞마다 줄서 있는 망사에 싸인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호기심에 자세히 보니 모두 실제 나무였다. 사람 정도의 나무를 예쁘게 잘라서 반 쪽짜리 통나무에 꽂아 놓은 것이다. 궁금증에 물어보니 이것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프랑스어로는 Sapin de Noël(사팡 드 노엘)이란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때 실제 나무를 많이 쓴다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가정집에서 실제 나무를 가지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했다. 나중에 찾아본 결과 한 해 겨울 프랑스에서만 400~500만개가 팔린다고 한다.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아니니까 환경에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목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든다는 것이 참 유럽의 낭만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슈퍼마켓이다. 여기는 쉽게 이야기하면 부자들이 식료품을 사러 오는 곳이란다. 들어가서 식재료들을 살펴보니 심지어 해외 요리서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러나 한국에는 없는 식재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줄지어 달려 있는 방울토마토, 그린 빈, 신선한 과일들까지. 가격은 비쌌으나 명랑한 색깔들과 과일 향이 즐겁게 느껴졌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즐거운 상상을 에 빠져들 수 있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파리에 살며 요리를 하고 싶다...


그리고 발레리씨는 나를 다음 블럭의 빵집에 데려갔다. 그리고 무려 먹고 싶은 빵을 하나 고르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참 운이 좋다! 이런 호의를 첫날부터 받을 수 있다니. 잠시 고민했다가 크루아상을 말씀드렸다. 줄을 서며 길게 늘어선 빵들을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빵집과 달리 거대한 유리창 안에 수족관처럼 빵들이 진열되어 있다. 대단한 디자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어로 써져 있어도 브라우니, 빵오쇼콜라, 키쉬, 바게트 등의 친숙한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



파리의 빵집에 들어가면 언제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빵이 유서 깊은 유럽의 전통식인 덕에 사람들에게 존중을 사는 이유일까? 다들 침착하게 기다린다. 빵을 사기 위해 가만히 줄 선 사람들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트레이에 빵을 담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직원에게 직접 무슨 빵을 살지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여행자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는데, 주문은 어찌저찌 한다 쳐도 처음 본 빵 이름 여러 개를 프랑스어로 기억해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 빵을 살 때는 구글맵으로 찾아 놓은 가게 메뉴를 가지고 예습을 하고 구매하고는 했다.


종이로 된 크루아상 봉지를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 으로 Bô-Zinc Café라는 비스트로로 향했다. 발레리씨는 이 가게의 단골손님이었다. 자리에 앉은 후 음료도 사 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커피(un café allongé)를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곧이어 발레리씨가 주문을 하고, 옆 가게에서 사온 빵을 먹어도 되느냐고 물어보셨다.

실제 모차르트 가 거리 투어는 십 분도 안 되어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도 이 글을 엄청나게 길게 쓴 이유는, 바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정말 제대로 파리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책에서 ‘프랑스 사람은 바게트를 주로 먹는다’는 문장을 보는 것과 실제 빵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바게트나 빵 봉투를 안은 채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깊이가 다른 경험인 것 같다. 그만큼 즐겁기도 하고. 당신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그들이 주말 아침으로 무엇을 사 먹고 어떤 가게들을 앞을 지나가는지 말이다.


출처

표지판 사진: Plaque Avenue Moazrt de Pari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laque_Avenue_Mozart_-_Paris_XVI_(FR75)_-_2021-08-18_-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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