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아줌마

여자는 결국 할머니가 된다.

by 코끼리 날개달기

- 난 네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 몰랐다. 정말.


스물여덟인가, 스물아홉이 되던 해였다. 어른이 되어 만난 동창은 내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놀란 눈치였다.


-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 글세, 유학 가서 공부하고 있거나, 뭐. 적어도 결혼해서 애 낳고 ‘아줌마’가 됐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


- •••


너무 크게 귀에 박힌 그 말, 아. 줌. 마.

초등학생 때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거 싫다고 했다고 복수한 걸까.


그때, 아줌마란 말을 처음 들어봤다. 아줌마 가 맞는데, 그 말은 듣기 싫었다.


그때만 해도 ‘아줌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뽀글 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지하철에서 생전 처음 본 옆자리 다른 아줌마와 20년 지기 친구인 것처럼 수다를 떨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얼마 전 아이를 낳은 친구한테 아직 미혼인 친구가 '아줌마'라고 했다가 싸움 날 뻔 하기도 했다.


-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 되냐, 뭘 그렇게 정색해.


- 장난으로라도 아줌마란 소리는 듣기 싫어!


‘아줌마’라는 말이 무척 기분 나빴던 경험이 있는 나는 화가 난 친구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나한테 '아줌마'라는 표현은 별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아줌마’인지 오래여서 익숙해진 것일까.


지금은 ‘아줌마’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 키우는 워킹맘의 모습이다.


‘아줌마’라는 표현이 고맙고 좋다.




- 땡큐, 맘(Ma'am)!


필리핀 사람들은 처음부터 나를 '맘'이라고 불렀다. 필리핀에서는 'a'를 읽을 때, '아'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아플(apple), 안트(ant), 맘(Ma'am) 이런 식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싫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영어 발음이 이상하다면서 흉을 봤다. 왜 기분 나쁘게 나를 '엄마(mom)'라고 부르냐는 말이지. 딱 봐도 내가 한참 어려 보이는 구만.


- 어머니! 어머님?

- 청년은 나이가 몇 살인데,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


예전에 ‘어머니'라는 말에 노여워하시던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처음 본 사람이 '어머니, 어머니’하고 부르는 거 기분이 나쁠 수 있겠다. 이제 겨우 환갑이나 칠순이셨을 텐데.


그분들도 이제 더 할머니가 되셨을 테니, 누가 어머니라고 불러주면 오히려 반갑고 좋으시려나.


시간이 참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