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휩쓸리는 사람들

Pachinko(파친코) by 이민진

by 코끼리 날개달기

구두 3천 켤레로 유명한 필리핀 전 영부인 이멜다는 얼마 전 다큐멘터리 ‘이멜다 마르코스:사랑의 영부인’에 출연했다. 필리핀이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말하는 이멜다의 뻔뻔함과 오만함을 듣고 있자니 속이 다 메슥거렸다.


수많은 혐의에도 저런 사람이 여전히 필리핀에서 사랑받는 정치인이라니. 도대체 왜.


필리핀 대선을 앞두고 이멜다의 큰 아들 '봉봉 마르코스'가 선전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왜.




내가 애정 하는 북클럽(독서모임)에서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21년 첫 번째 책으로 정해진 ‘파친코’는 그 배경이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토론은 자연스럽게 식민통치에 이어 정치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No Japan(불매운동)'과 'Comfort Women(위안부)’에 대한 생각을 뉴스를 토대로 공유했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전범국임을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모두 분개했다. 그런데 늘 그렇듯 북클럽에서 역사 이야기가 나오면 필리핀 사람과 아닌 사람들로 편이 나뉜다.



필리핀인 회원들은 필리핀을 년간 지배했던 스페인, 미국,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전혀 적개심이 없다. 필리핀 회원들은우리는 잊었다 한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살기 힘드니 일본이 와서 나라를 지배해줘도 괜찮지 않겠냐며 동의를 구한다.



내가 위안부 집회와 평화비에 대해 설명하자, 미국인 회원이 뉴스를 찾아 필리핀도 그런 피해자가 많다고 알려주었다. 필리핀인 회원들이 그게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일이냐며 무척 놀라워했다. 잘 잊어버린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적도 없다는 말이다. 필리핀의 지식인들 수준이 이러한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 사정은 어떨까.



소설 ‘파친코’가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된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다. K드라마에 열광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자신들의 역사를 생각해 볼 것이다. 필리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더 이상 나라 팔아먹으려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파친코’의 첫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