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근심걱정쟁이-3편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

by 코끼리 날개달기

- 애들이 엄마 보고 ‘천사’래.

- 왜 내가 천사래?

- 엄마가 엄청 착하잖아.


분명히 칭찬인데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초등 고학년 남자아이들이 보기에 착한 엄마라는 말은 그저 무엇을 해도 용서해 주고 거짓말에도 잘 속아 주는 엄마라는 뜻인 것 같아서다. 수다쟁이였던 아이가 부쩍 자란 느낌이 든다. 요즘 곧잘 '엄마가 내 엄마여서 좋다'는 말을 심심찮게 하는데 꽤 안심이 된다. 클수록 자기 멋대로 하려고 들어서 키우기가 힘에 부친다 싶다가도 가끔 저런 말을 무심히 던지면 그래도 우리 관계가 괜찮은 것 같아서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게임 이야기만 하냐고 핀잔을 줬더니, 오히려 엄마나 아빠, 혹은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고 한다.


- 애들은 엄마들이 한 밥이 맛이 없대. 난 가식(집밥)이 제일 맛있는데.

- 넌 꼭 가식이래. 난 외식이 좋다. 근데 엄마가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럼 다른 친구들은 여자 친구가 있어?

- 다들 있지. A는 B랑, 또 C는 D랑 사귀고.

- 뭐야, 근데 넌 도대체 왜 없어? 혹시 너 남자 좋아해?


편견 없는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터뜨린 아이는 그제야 진실을 말한다. 지금껏 몇 번이나 물어도 누구는 못 생기고, 누구는 잘난 척쟁이고, 누구는 못돼서 싫다더니만 벌써 사귄 지 100일도 더 지난 여자 친구가 있었던 거다. 속았다는 배신감도 배신감이지만, 여자 친구에게 떠나보낼 생각을 하니 서운함이 더 크게 몰려온다. 그래도 곱씹어 생각해보면 이제라도 여자 친구가 생긴 게 어딘가 싶다. 그러면서 덜컥 인상을 쓰며 걱정부터 한다. '사랑'이라고? 벌써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그건 너무 빠른 게 아닐까. 서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고 하니 이거 갑자기 급히 성교육이라도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 근데 사랑을 하니까, 그 애가 신경이 쓰여.

- 응? 무슨 말이야?

- 그냥. 수업시간에 피곤하다고 엎드려 있으면 신경이 쓰여.


신경이 쓰인다는 말이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아이의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갖가지 19금 장면들만 떠올렸다니 무안하다.


- 야. 엄마는 피곤해서 누워있어도 신경도 안 쓰고, 말도 안 듣더니!

- 엄마는 어른이잖아. 알아서 해야지.


신경이 쓰여도 '사랑'은 좋은 거란다. 엄마랑 아빠가 사랑해서 이렇게 결혼하고 자식들이랑 사는 게 참 좋아 보인다며. 내 아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쩌면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하나 싶다.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엄마의 인생까지 잘 살고 있다고 토닥여 주다니, 나도 믿기 어렵지만 10분 전에 포켓몬 카드로 동생이랑 치고받고 싸우던 그 아들과 동일인물이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싸려면 어서 자야 하는데, 아들의 첫 여자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나니 궁금해서 잘 수가 없었다. 무신경한 아들은 이불을 덮고 돌아 누워버린다.


- 아! 엄마한테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고, 그 친구랑 듣는 수업도 재미있고, 친구가 힘들어하면 속상하고 무엇인가 챙겨주고 싶고. 나도 인생을 살면서 몇 번씩 겪었던 경험들인데 새삼 마음이 설렌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결혼하는 배우자를 만나기 전까지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아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사랑도 해 보았다. 그러니 걱정이 앞선다. 우리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 친구는 얼마간 더 필리핀에서 지낼 텐데, 이 생이별을 아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사랑을 할 때는 이별이 가장 가슴 아프다.



내가 대학에서 첫 남자 친구를 사귀다가 헤어졌을 때, 우리 엄마가 내 곁에 있었다. 위로해 주는 친구들이랑 술을 진탕 마시고 지하철에서 내내 울고 지하철역에 내려서 계단에 앉아 울다가 도저히 울음이 그쳐 지지가 않아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울상도 그런 울상이 없는 얼굴로 다가와 등을 쓸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흑흑'이 아니라 '엉엉'이었다. 엄마의 큰 눈이 흘러내릴 듯 나를 바라보았다.


- 괜찮아, 다 지나가.


그때는 내 '사랑'에 미쳐서 몰랐는데 그때 겨우 40대 중반이던 엄마도 첫사랑을 모두 절절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것 같다. 엄마도 다 겪어 본 사랑이고 이별이었겠지.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처럼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계속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엄마 말처럼 다 지나갔다. 힘든 일이 생기면 늘 엄마에게 가장 먼저 다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그렇지 못했는데, 크면서 점점 더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헬리콥터'처럼 내 주위를 빙빙 돌며 계속 지켜주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다. 어쩔 때는 내가 엄마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마는 모든 것을 나에게 내어준다.


'엄마'는 '기능'과 '관계'라는 역할이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엄마는 내가 자라는 동안 모든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주었다. 엄마로서 부족한 점이 있었나 억지로 찾아보려고 해도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여태껏 무슨 일이 생겨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아주 바람직한 관계도 형성해 주었다.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준다. 가끔은 다 말하고 나서 딸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말했으니 엄마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후회가 든다. 그런 적이 여러 번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에 단 한 번도 엄마는 울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랬다. 엄마는 차분하고 강한 사람이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절절하게 엄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데,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하셨다. 단 한 번도.

혼자서 유럽여행을 가든, 어떤 남자 친구를 사귀든, 무슨 직장을 구하건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한 번은 그런 게 이상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 엄마는 왜 나한테 공부하라고 안 했어? 내가 그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지도?

- 무슨 서울대야. 너는 공부하는 거 싫어하고 노는 거 좋아했어. 좋아하는 거 해야지.


- 엄마는 내가 뭘 해도 다 대답이 오케이잖아. 걱정 안 됐어?

- 걱정 많이 되지. 근데 글세, 나는 그냥... 너를 믿었지.


이러니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맙다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엄마는 내가 바라는 '엄마 상'이고 여전히 그렇게 곁에 계신다. 내가 일하는 동안 손자 둘을 업어 키우시고 이제는 주재원 생활하는 사위 걱정하시면서 한국에서 이것저것 챙겨 보내주신다. 손주들 그렇게 보고 싶으시면서도 3년 넘게 먼저 전화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나 힘들고 신경 쓰일까 봐 당신이 보고 싶은 마음은 일절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 엄마도 나처럼 아이가 안 보는 데서 혼자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러셨겠지. 첫 여자 친구를 사귀는 아들에게 모든 걱정 뒤로하고 한마디만 해줘야겠다.


- 아들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