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적선

동냥도 업(業)

by 코끼리 날개달기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좋아하는 식당에서 외식 중이었다. 가방을 멘 학생이 들어오더니 우리 테이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열 개 넘는 테이블 중에 우리 테이블을 고른 거다. 다짜고짜 가방을 열고 초콜릿 과자를 꺼내더니 제발 사달라고 한다. 가격이나 맛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도 없이 그저 사달란다. 동냥이었다.



아이들과 함께여서 그다지 여유롭지도 않은 식사자리였는데, 갑자기 그런 사람이 다가와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 순간은 적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 I’m from Tondo.



그 한마디가 그를 다시 보게 했다. 나이는 몇 살인지 묻고 학생이라기에 학생증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내 질문에 뭐하나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며 거짓말로 둘러대는 느낌이었다. 직업이 뭐냐고 하니 과자를 보이며 이것을 파는 게 직업이라고 했다. 내가 이런 몰에서 식사하는 사람 붙잡고 과자 파는 게 어떻게 직업이냐고 따지자, 그럼 기부를 해달라고 한다.



- okay okay donation! Ma’am, please donation.



톤도라는 지역은 포토그래퍼인 친구가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열어 알게 된 곳이다.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 안에서 살고, 쓰레기 속에서 썩은 것도 찾아서 먹는 그런 동네다. 사진들이 눈에 밟혀 학생인지 청년인지 모를 그 사람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기에, 정말 네 말대로 학생이면 최소한 영어공부라도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난 이 과자가 필요 없으니 안 살 거라고 했다. 그리고 도움을 주었다. 천 페소를 건넸다. 반짝이는 눈으로 다시 뺏어갈까 순식간에 일어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식당을 나가면서도 뒤돌아서 나를 몇 번 쳐다보았다. 아마 신기해서 쳐다본 것 같다.



마닐라에서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빨간 신호등에 대기하면 창문을 못 연다. 신호대기 시간에 사람들이 차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차창을 두드리며 과자를 포함한 여러 물건을 사라고 강요한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이 차에 붙어서 구걸하는데 어차피 돈을 줘도 폭력배들이 돈을 빼앗아가기에 줄 수도 없다.



- 그래도 저 사람들은 뭘 들고 나와 팔기라도 하네.

- 그게 무슨 뜻이야?

- 그저 돈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들보다는 낫잖아.

- 그런 건가?



남편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구걸을 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피할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사시사철 뜨거운 필리핀에서 아스팔트 도로에 나와 알 수 없는 음식이든 물건이든 파는 것은 대단한 ‘의지’ 없이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나마도 형편이 되고 파는 법을 안다는 거라 나은 축이다.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겠는데,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일할 줄도 모르고, 일을 구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필리핀에서 만든 초콜릿 과자라며 완제품을 사서 되파는 것이 어린 청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겠다. 파는 법을 모르니 과자를 들고 있으면서도 팔지를 못 하고 구걸만 한다. 영어가 서툴러서 아르바이트도 못할 거고 돌봐야 하는 동생들 때문에 도시에서 막노동도 못 할 것이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다. 영어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과자 파는 방법이라도 알려줄걸 그랬다. 그렇게 주눅 든 모습으로는 백날 다녀봐야 앵벌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자를 안 살 테니 말이다. 그것도 어려우면 차라리 과자 팔러 다니면서 유튜브라도 찍어보라고 할 걸 그랬다. 하긴 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영어를 못 배운 사람이라 할 수도 없었겠다.



주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모르는 척했지만, 내가 그 청년에게 천 페소를 건넬 때 모두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거짓말하는 애일 텐데 왜 돈을 주냐고, 그 말을 정말 믿냐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나도 청년이 말하는 ‘donation(기부)’라고 생각했다면 썩 내키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천 페소를 기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선’이었다.

나는 톤도를 안다. 우리 돈 23천 원(1천 페소)이면 며칠이고 굶었을 그 필리핀 청년의 가족이 두 달간 먹을 수 있는 돈이다. 구호단체를 통해 기부하는 돈은 현지의 폭력배들이 그 돈을 갈취하기에 차라리 오늘처럼 청년에게 직접 돈을 쥐어주는 편이 나은 건지도 모른다. 혹시 나쁜 사람들이 시켜서 한 짓인가 싶어, 청년이 식당을 나서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나를 뒤돌아보며 짓는 울듯 말듯한 표정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가족과 저녁밥 즐겁게 먹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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