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자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다.
누군가 정신적 혹은 물질적인 손해를 끼쳤다면, 보상이 요구된다. 물론 제대로 된 사과 없이 ‘보상’만 언급한다면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만큼 결과에 대한 보상보다는 과정에 대한 '사과'가 더 중요하다.
‘사과'를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성으로 한다거나,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하거나, 오히려 나를 이해력 부족한 사람으로 비난하면 용서할 아량이 사라진다.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과'를 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마주치고 싶지도 않다. 가족이나 친구는 당연하고, 일생에 한 번 만나는 승무원이나 가게 점원이라도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 미안해. 미안하다고 했잖아.
- 미안해. 나는 제대로 말했는데 네가 잘못 들은 거야.
- 미안하지만,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과를 받는 상대방의 기분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사과를 했다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사과는 안 받으니만 못 하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상황은 싸움으로 번진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잘못은 제대로 사과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진정한 사과'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용서를 해 줄 때까지 해야 한다. 잘못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 얼마나 언짢을지에 대한 공감의 표현을 해야 한다. 잘못한 사람이 전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정말 미안해.
-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 미안해.
이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으면, 어떤 일로 내가 피해를 보게 되었더라도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해한다. 나도 그런 실수를 하게 될 때가 있을 테니,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수록 더 간단하고 쉽게 상대를 용서할 수 있다. 진정한 사과를 받고 나면, 오히려 그것이 더 만족스러운 상황과 인간관계로 연결되기도 한다.
제대로 사과를 할 줄 알면, 살다가 큰 실수를 하더라도 상황을 해결하고 계속해서 떳떳하게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를 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의 화살이 두렵거나,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기가 힘들다.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는 사람들은 비난받을 용기가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사람들끼리는 마음과 뜻이 잘 통한다. 결국 '제대로 된 사과'는 '소통'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의 부인들이 번갈아 '사과'를 했다. 두 사람 모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대신, 그저 대통령 당선이라는 이슈에 초점을 맞추어 대본을 읽었다. 떳떳하지 않기 때문에 동문서답을 하고, 비난이 두렵기 때문에 질문조차 받지 않았다.
불통이다.
어쩌면 소통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