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는 것이 답이다.
- 사람이 싫으니 골프도 치기가 싫어.
- 교만하긴. 인간관계도 골프처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거야.
한동안 골프를 치지 않다가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내 마음도 소중하고, 내 시간도 소중하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다. 지난 인간관계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은 충분히 가졌다고 확신했다.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도덕적으로 살았다. 내 아이들의 엄마라는 위치를 생각하면 결코 부끄러운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반성하려고 애를 쓸수록 화가 났다. 내 잘못이 있다면 성인군자처럼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주려고 했던 그 생각을 했던 게 가장 큰 잘못이다.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너무 부족한 사람인 주제에 어디 감히 누굴 이해한다느니 그런 욕심을 부렸을까.
가까운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골프를 치러 가니 예전 추억들도 생각나면서 훈훈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즐거운 생각만 하자고 단단히 마음먹고 나갔던 자리였다.
좋은 친구를 만난 탓이었을까. 봇물 터지듯 그동안 삼켰던 말들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이야기 좀 들어봐.’ 하고 시작한 말이 4시간 이어질 줄은 몰랐다.
- 내가 만만해 보이긴 한가 봐.
아니, 자기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게 그렇게 당당할 일인가? 겉과 속이 다른 게 당연한 거라니.
나보고 그 험담에 동조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면서 가르치려고 들잖아!
친구 흉보는 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떳떳하니?
잘못은 본인이 해놓고 어디서 남의 다리를 거냐고.
18홀을 다 돌고 나니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장대비가 쏟아져도 옷 젖는 줄을 몰랐다. 어느새 실실 웃음이 날 정도로 아까와는 너무 다른 간사한 내 마음이 느껴졌다.
공이 해저드에 가면 어떻고 벙커여도 무슨 상관인가. 점수가 보기면 어떻고, 더블보기면 어때. 트리플 보기를 하더라도 내 마음을 달랠 찰떡같은 말들을 들으면 마냥 기뻤다.
애초에 오늘은 골프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
- 나도 여중 여고 졸업했잖아, 여자애들끼리 이런 편 가르기 하는 모습 익숙하다.
아. 근데 이건 해도 너무 하잖아. 지금이 나이가 몇인데 질풍노도인 애들처럼 구느냐고.
쿵작이 맞는 친구와 실컷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동안 이해심 많고 포용력 있는 사람인 척하느라고 마음이 괴로웠나 보다.
앞으로는 최소한의 인내심만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머릿속이 싫어하는 사람들로만 꽉 채워질 것 같다.
걸핏하면 남 탓하는 사람도 싫고,
남의 험담만 좋아하는 사람도 싫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말 일삼는 사람도 싫고,
본인의 생각만 맞다고 고집부리는 사람도 싫다.
싫다고 욕하면서 어느새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있지 않나? 반성을 해 본다.
골프 점수에 욕심을 부리면 공이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휘어진다. 이제나 저제나 욕심은 금물이다. 하던 대로만 하면 공은 똑바로 가는데, 그까짓 5미터 더 보내겠다고 쓸데없는 힘을 줬다간 영원히 그 공은 찾지 못할 곳으로 가고 만다.
역시 오늘도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나도, 골프도.
내려놓자. 힘 빼는 것이 답이다. 인생도, 골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