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해몽, 그리고 비몽사몽
아이가 저 앞에서 잘 뛰어놀고 있는데 나는 더 이상 아이 곁에 다가갈 수도 만져볼 수도 없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다가가고 싶지만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공포감이 밀려드는 순간, 잠에서 깼다.
옆에 누워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코 끝에 손을 대보고 나서야 큰 한숨을 내쉬었다. 별 거 아닌 꿈이겠지만 검색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캄캄한 새벽,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 꿈해몽을 몇 개나 읽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후부터 아이의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아팠지, 자식이 아픈 건 정말 보기가 힘들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꼭 이렇게 한 번씩 아프다. 거의 집에 있거나 가끔 외출하더라도 마스크를 끼니 가장 최근에 아팠던 게 2년도 더 지났다.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살았다.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해열제를 먹여 열이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밤새워 아이를 지켜볼 작정이다. 아이는 낳는 게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역시 키우는 건 답도 끝도 없는 고단한 여정이다.
물론 출산도 육아보다 덜 힘들다고는 못 하겠다. 임산부로서 나의 마지막 선택은 무통주사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집에서 12시간 동안 진통을 견디고 병원에 갔다. 무통주사를 맞을 경우 분만의 속도가 느려져 아기가 그 좁은 길에서 더 긴 시간 아프고 힘들다는 글을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출산보다 출생이 훨씬 고통스럽다는데, 내 아기를 더 힘들게 할 수 없었다.
- 무통주사 맞을까.
- 당연하지.
- 모유 수유해야 할까.
- 분유 좋아, 분유 먹여야 잘 자고.
- 수면교육 할까.
- 그럼!
정작 나는 아이 둘 다 무통주사도 안 맞고, 모유수유 13개월씩 하고, 수면교육도 실패해서 늘 안아서 재웠다. 아이가 둘이라 처음이라 그랬다는 변명도 못 한다. 불안한 마음에 애지중지하느라 그랬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저렇게 물으면, 그 힘든 과정을 도저히 추천하고 싶지가 않다. 왜냐고 묻는다면 며칠에 걸쳐 그 이유를 대줄 수 있다.
아이가 조금씩 정상체온으로 돌아오니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아프려고 그런 꿈을 꿨나 보다. 마치 누군가 신호를 보내준 것처럼 나는 그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아플 수도 있겠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빠 역을 맡은 배우 매튜 맥커너히가 다차원의 시공간에서 어린 딸에게 책장의 책을 밀어 모스부호를 남겼던 장면이 겹쳐진다.
혹시 미래에는 시간의 세계에 들어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무의식으로 연결해서 과거로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꿈은 미래의 내 아이가 과거의 걱정쟁이 엄마를 위해 보낸 메시지는 아닐지. 포털사이트에서 찾았던 꿈해몽만큼 그럴싸한 생각이다.
오늘 밤 꿈에 또 메시지를 보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