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에 관한 소회
않되는대요. 애시당초 글렀어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맞춤법 틀린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맞춤법을 모르는 무신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글자들이 먼저 거슬렸고, 그다음에서야 나를 배려하지 않은 표현에 기분이 상했다.
지나치게 맞춤법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든 남이든 맞춤법을 틀려 쓰면 창피했다. 일부러 맞춤법에 꼭 맞게 쓰려다 내용이 어색해지기도 했다. 문어체도 고집했다. 심지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난', '했다'를 지우고 '나는', '하였다'로 고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출판사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여기는 영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술 더 떠서 가까운 사람들이 쉬운 맞춤법을 틀리면 직접 지적을 해가며 신경 좀 쓰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되었지, 그때는 맞춤법이 왜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몇 해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에세이 시리즈를 읽고 나서, 멀미가 날 정도로 괴로워 책 많이 보는 언니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 0000 알지? 이게 어떻게 1년 넘게 베스트셀러지? 내용은 말할 것도 없이 기본적인 문맥은커녕, 주어랑 서술어 호응도 안돼.
- 맞아. 내용도 그냥 SNS에 혼자 올릴 만한 그런 얘기더라.
책 내용이라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쓴 내용이 대부분인데, 독자들이 그 책을 2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렸다. 나와 가까운 분에 관한 꼭지도 실렸는데, 어찌나 얕고 대강 쓰였는지 독자이자 지인으로서 언짢았다. 나는 이런 책에 돈과 시간을 낭비해서 화가 났다.
- 라디오에서 그 작가가 직접 광고하는 거 들었어? 책은 내용도 없는데 목소리로 파나 봐.
- 그러게. 근데 사람들이 요즘에는 그런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첫 책에 실망해서 그 이후에 나온 책은 안 봤어.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지만, 역시 언니는 언니다. 내가 그렇게 흥분하며 비판할 때, 모든 것을 이미 초월한 언니는 ‘나도 너처럼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라는 말은 뒤로 함축한 채, 덤덤하게 공감해주었다.
얼마 전, 그 책과 비슷한 에세이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제목만 봐도 응원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그런 책이었다. 책을 펴자마자 틀린 맞춤법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목구멍에 탁탁 걸려서, 계속 읽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선물해 준 마음을 생각해서 열심히 읽었다.
이전의 나라면 다른 비슷한 책들과 한데 묶어 또 한참 비난을 해줬을 터였다. 이렇게 대충 써놓고 양심 없게 돈을 받고 책을 파냐고 그랬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책을 사서 보는 사람들이 참 좋다고 말한다는 것을.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면서 위로가 된다고, 고맙다고 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을.
여기서 문법이 맞고 틀리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 김혜자 선생님이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어떤 방송인이 선생님의 의식이 부정적이라 그렇다며 ‘다르다’로 말하게끔 정정했다. 한국 사람끼리 대화할 때, 누군가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말한들 그 뜻을 혼동할 사람은 없다. 모두가 알아듣는 상황에 ‘국민엄마’의 성격까지 들먹인 그 방송인은 네티즌들에게 수많은 질타를 받았다.
뜨끔했다.
나도 ‘내용’보다 그저 ‘규칙’이 우선일 때가 있었다. 내 시야는 한 치 앞이었다. 넓은 눈으로 보니 규칙은 한낱 규칙일 뿐이다. 규칙에 얽매이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가 무겁고 재미없는 글, 틀에 박히고 뻔한 글이 되고 만다.
공감과 위로를 주는 글은 그 자체로 좋은 글이다. 감사하다.
- 괸찮아요.
- 힘네세요.
- 잠시 쉬어도 되요.
괜찮다고, 힘내라고, 쉬어가라고.
내 눈이 다 알아보고, 내 마음이 다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