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대하는 자세-잘 놓아주기
골프에서 릴리스(release)는 공을 치고 나서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주는 동작이다. 힘을 빼고 클럽을 놓아주면 저절로 팔이 뻗어진다. 이때 팔을 뻗지 않고, 팔꿈치를 잡아당기면 폼도 이상하고, 공도 멀리 안 가고, 부상의 위험까지 따른다. 팔을 당기는 이 습관 하나 때문에 갈비뼈, 손목, 어깨 등을 부상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을 맞추려고 클럽을 꽉 잡으면 잡을수록 클럽을 놓아야 할 순간에 팔꿈치를 굽히는 자세가 나온다.
필드에 나가면 연습장에서 연습했던 그 모든 자세들은 잊어버리고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공을 최대한 덜 쳐서 점수가 낮게 나오도록, 목표는 하나, 스코어다. 릴리스를 연습했다고 해서 오늘 당장 거리가 몇 야드씩 늘 거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랬다가는 평소만큼도 공을 못 보내고 클럽으로 뒤땅만 파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또 릴리스를 생각하느라 클럽을 급하게 내리고 말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그날은 경기를 망치고 만다.
연습장에서 충분히 익힌 자세는 몸이 기억하므로 머릿속에서 복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골프는 중간에 여유 시간이 너무 많은 나머지 자꾸만 머릿속에서 자세와 동작을 생각하게 된다. 격렬한 운동경기는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다. 그런데 골프는 한 번 치고 다른 사람들이 할 동안 기다리고, 또 한 번 치고 한참 이동하느라 어쩔 수 없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생긴다.
릴리스.
그만 잊어야 하는데 전반 9홀을 마칠 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연습하고 왔는데 왜 릴리스가 잘 안 되지. 거리가 더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 모양이지.
타이거 우즈는 스무 걸음을 걷고 나면 직전에 친 공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다고 했다. 세계적인 선수가 수없이 연습한 끝에 그런 노하우를 갖게 되었을 텐데, 초보자인 내가 억지로 머릿속을 지워보려 한 들 뜻대로 될 리가 없다. 아쉬운 샷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골프는 나의 취미생활 중 유일한 스포츠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다. 힘이 빠질수록 더 잘하는 운동, 점수가 낮을수록 잘하는 운동! 정말 태어나서 이런 운동 처음 해 본다. 달리기, 줄넘기, 배구, 배드민턴 등 이런 체육시간 필수 운동 중에서 힘을 빼고 하는 운동은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근본 없는 골프'는 호기롭게 시작될 수 있었다. 팬데믹 동안 시작한 거라, 코치를 만나기도 어려워서 '유튜브'에 있는 많은 동영상들을 보면서 골프를 배웠다. 난생처음 힘 빼야 하는 운동을 시작했는데, 유튜브에 나오는 코치들의 말만으로는 무슨 소리인지 1년이 넘어가도록 모르겠다. 골프 클럽을 놓아버려야 한다는데, 하면 할수록 더 꽉 잡고 있다.
놓아주고, 보내주는 것은 너무 어렵다.
미련이 남아서 그런가.
공을 잘 쳤으면 그저 놓아버릴 수 있을 텐데, 생각한 대로 못 친 것 때문에 클럽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공이 떠났으면 그만 쳐다봐야하는데, 보내주지를 못한다.
국민멘토 오은영박사가 연인이 헤어질 때도 그렇다고 했다. 헤어진 연인을 놓지 못하고 SNS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가 헤어지는 방식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헤어진 연인을 놓지 못하고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하고 싶었던 말을 상대에게 보낸 후 차단해 버리라고 조언했다. 그러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거라고.
필리핀에 산 지 3년이 넘어가니 이제 가까워진 사람들과 헤어질 일이 많다. 이웃들이 필리핀에서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발령을 받아 떠난다. 3년 넘게 이웃으로 살면서 정이 많이 든 사람도 있고, 나와 잘 맞지 않아 헤어져도 전혀 아쉽지 않은 그런 관계도 있다.
잘 헤어지기 위해서, 잘 놓아주기 위해서, 내 방식으로 인사를 해야겠다.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에게는 꼭 다시 만나자고 몇 번 다짐을 받아둔다. 버지니아든, 쿠알라룸푸르든 꼭 가겠다고. 서로 애정 하는 물건을 나눠갖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인사를 나눈다.
물론 어서 헤어지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모르는 척 지나가기에는 마음 한편이 너무 불편하다. 내가 보내주는 쪽이니까 밥 한 끼, 차 한잔이라도 꼭 사 주고 떠나보낸다. 함께 지내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인연이 닿아 같이 한 시간들은 소중하기에.
그게 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