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즐겁게 사는 필리핀 사람들-4편

통제할 수 없다.

by 코끼리 날개달기

사람들이 화를 가장 많이 대상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엄마'나 '배우자' 혹은 '자녀'라고 한다.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거의 '나'와 동일하게 의식하기 때문에, 이 가까운 사람들을 나 자신처럼 통제할 수 없을 때 화가 난다고 한다.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필리핀 사람들에게 나는 '싸움닭'이다. 처음에 필리핀에 와서 적응하는 기간에는 이 사람들이 '일부러' 날 놀리려거나, '의도적'으로 못 들은 척 혹은 못 알아듣는 척하거나, ‘기어이’ 골탕 먹이려고 한다고 오해했다. 외국인 상대로 'set up' 범죄들이 횡행한다고 할 때는 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 운전해 주는 기사에게도 화를 내고, 가게 점원에게도 화를 내고, 식당 종업원에게도 화를 냈다. 정당한 대가를 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화를 내면 그 사람들은 벌게진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 자신들의 실수에 대한 사과의 말도 없고 그런 기색도 비치지 않지만, 한참 주눅이 들어 있어 보였다.



- 왜 10분이면 갈 길인데, 이렇게 헤매는 거예요? 내가 외국인이라서 속이는 건가요.

- 분명히 새 기프트 카드의 비닐을 당신이 뜯었잖아요. 그런데 잔액이 0원이라니 말이 되나요?

- 주문한 메뉴가 누락되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부탁했는데 왜 아직도 음식이 안 나오는 거죠?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나뿐이고, 그 사람들은 동료들과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나는 상황이 더 이상 화나지 않을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그것은 뜻밖의 '공룡'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공룡 백과를 읽어주던 중에 필리핀 가정부가 신기하듯 쳐다보며 말했다.



- 사람들은 상상력이 대단한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여러 종류의 공룡을 만들어 낼 수가 있지?



문법적으로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가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공룡을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알고 있었던 거다. 깜짝 놀란 내가 혹시 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도 공룡이 상상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과학이나 사회, 역사 수업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영어수업이 재미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때 모든 것이 이해됐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죽는다는 것, 초콜릿은 설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엘리베이터는 전기로 움직인다는 것을 그녀는, 그리고 내가 만난 많은 이 나라 사람들이 모른 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몰랐던 것이다. 운전기사는 길이 헷갈려서 헤매다 오래 걸린 것이고, 기프트카드를 긁으니 잔액이 없다고 나오니 그렇다고 했을 뿐이고, 음식 주문을 자꾸 잊어버려서 늦게 갖다 준 것뿐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사람들의 배경을 몰랐던 나의 어리석음이 나 자신을 화나게 만들고 싸움닭으로 만들었다.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밑바탕에는 나는 ‘모든 것을 안다’는 자만심이 깔려 있는 듯하다.


‘화’에 대한 전문가인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 떠오른다.



사는 동안 계속 사는 법을 배우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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