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소주 마시고 첫차 기다리기
- 너 참 좋을 때다. 나 때는 거기 뚝방에서 볼 차고서 옆에 여대 근처 가서 밤새 술 먹고 그랬는데.
참 좋았다.
나의 깊은 고뇌를 안주삼아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며, 길고 긴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 시간이 좋았다.
어쩌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그 시간들이 가슴 한편에 위로로 남아 나를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주 한잔마다 눈물 한 방울이 섞였다.
누군가는 애인과 헤어져 사랑을 잃고,
누군가는 부모와의 실연에 갈 곳을 잃고,
누군가는 좌절의 연속에 마음 둘 곳을 잃었다.
밤새 눈물 섞인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 친구들과 알고 지낸 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가끔 상갓집에서 마주친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라는 말 대신,
‘아버지,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라는 말을 전한다.
상갓집에서 소주잔을 받아 놓고 내 얘기를 하는 대신,
아이들의 나이와 재직 회사의 안녕을 전한다.
진하고 깊었던 이야기는 더 이상 이 소주잔에 없다.
- 너 참 좋을 때다.
대학생인 사촌동생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에 이 모든 것이 담겨있다.
- 아, 형. 완전 젊꼰이네. 뭐가 좋을 때야! 코로나 때문에 1년 동안 노트북으로 수업 들었다. 이게 뭐냐. 형은 맨날 퇴근하고 술 먹으러 가지. 좋겠다, 돈도 벌고. 여자도 만나고. 요새 대학생은 쉴 시간이 없어. 진짜 바쁘다고. 군대 갔다 오니까 정말 몰아친다. 용돈이나 좀 주라. 술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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