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9
예전에 다른 글에서 잘 머물기 위해 떠난다 했다
돌아보니 제대로 떠나기 위해 머무르기도 하는 듯
음력 정월 보름의 큰 달을 본 후로는 그 마음이 컸다
무언가 가득 채워지기 위해 결핍의 시간을 견딘 듯
푸르디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바다가 그리워졌다
바다는 모든 길의 끝에 있어서 끝까지 가야만 한다
끝까지 내달리는 마음은 무엇인가
가장 기다란 차를 타고 기다란 시간을 달려간다
풍경은 달려와 창을 핥고 훕 맡고는 뒤로 사라진다
산은 바다를 쉽게 보여주지 않으려 쳐 둔 병풍이다
놀랍게도 차는 직선이어도 길은 곡선으로 우회한다
현실에서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눈빛 사이로 피어나는 몸짓들이 어색하다
지난 기억들이 도움 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은 오로지 지금이라는 손잡이
이제가 마지막이라는 경고가 달콤하게 느껴진다
미루는 일이 죄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나씩 혹은 뭉터기로 버려지는데 손실이 없다니
기존의 계산이 어그러지고 새 공식이 만들어진다
돌아오는 길은 떠날 때의 길을 거꾸로 갖지 않는다
만약 같은 성질이었다면 가서 돌아오지 않을터이니
귀가의 목적은 집이 거기 있어서가 아니라 떠나는 길이 돌아올 때 다른 표정으로 변하는 것을 직접 몸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란 건 분명하다
길의 변심은 곡선이라 염치없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