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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낭송가는 시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읊어야 하나요
호미는 우리네 전형적인 농기구로 홈을 판다 하여 그리 명명된다 이를 이용하여 김을 매거나 흙을 파거나 씨를 심을 때에나 발굴 시에도 사용한다
대장장이는 쇠를 불에 달구어 두드려 호미를 만든다 이를 만드는 정성과 집중력과 정교함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해서 완성된 호미까지 숭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호미는 그저 결과물일 뿐
농부는 대장장이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호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호미의 탁월함만 소비할 뿐이다 마치 대장장이가 농부의 마음을 지극히 염려하여 호미를 만들지 않듯이 말이다
농부가 사용하는 호미가 우수해 호미를 만든 대장장이를 칭송할 수는 있으나 호미를 숭상하여 어쩔 줄 몰라 신성시하는 것은 지나친 물신주의다
대장장이의 손을 떠난 호미의 주도권은 순전히 소비자인 농부에게 있다 세상 어떤 호미도 사용설명서를 가지지 않는다 잡초를 뽑든 흙을 엎든 사람을 죽이든(옛날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킬 때 그들의 손에 쉽게 들려진 무기였다) 사용자의 몫
대장장이의 수고와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과 그 결과물을 대하는 태도가 동일할 수는 없다 도구가 사용주체보다 앞설 수는 없다
낭송가에게 있어서 시는 도구에 불과하다
시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보다 이를 어떻게 표현하여 청자를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마땅하다
Q. 시의 부제도
낭송에 꼭 넣어야 하나요
부제는 호미에 달린 라벨과도 같다
가격표를 붙이고 김을 매도 무방하지만 거추장스럽다 취향의 문제이지 생략한다 하여 시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대장장이의 입장에서는 하나하나의 호미를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하나 만든 후 늘 아쉬움을 가진다 완벽한 호미가 아니기에 다른 호미를 또 만든다
시인도 그러하다 시마다 자신의 결핍을 알기에 또 시를 쓰는 것이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낭송함에 심드렁한 까닭이 정확한 활자발화에 있지 않고 적확한 감성전달에 있음을 낭송가들은 헛짚지 않아야 한다
시인의 손에서 이미 떠난 시를 신주단지 모시듯 어쩔줄 몰라 시 전체보다 시어 하나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한 낭송가의 모습이 아니다
좋은 낭송가는 도구에 불과한 시의 외형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의 가치를 끄집어 낼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