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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이 내리면
생각이 나 주겠지요
오랜 세월에 묻혀
어렴풋해진 얼굴
-원태연 <다시 눈이 내리면> 중에서
맞은편 아낙들의 대화는 자식 자랑이 끊이지 않고
뒤편 아저씨들의 대화는 노조 고충이 끊이지 않고
두 테이블의 대표를 뽑아서 바꿔 앉으세요
섞인 자리에서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할까
모두가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 통하는 접점이 있을 텐데
말문이 서로 막혀 앞에 놓인 찻잔만 들이키고 잔 손잡이만 매만지고
저 이제 아이 밥 해주러 가야 해서 일어나야겠어요
안 그래도 저도 마침 회사서 급한 호출이 있어서요
어디서나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사는 거니까
우리말인데 두 테이블의 대화가 섞여 들리면 통역이 필요하다
말은 알아먹는데 말귀는 알아먹지 못하는 내가 된다
대화는 파도 같다
포말을 일으키다가 모래를 고르게 쓰다듬다가
밀다가 끌어당기는 꼴이 저 푸른 바다의 파도
일정하게 귀를 타격한다
이건 소음이 아니다 아니다 아닐거다
아름다운 파도 소리다
소리를 보지말고 파도의 파고를 보자
내 안주머니에 모셔둔 서핑보드를 모처럼 꺼내 파도에 맡겨보자
아! 기분 좋다
난 지금 카페에서 서핑보드를 타고 있다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