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66호
흰 그림자
윤 동 주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4월에는 4시를 수시로 챙기기로 해
24시간 중에서 오전 4시나 오후 4시나 모두 느슨한 시각
아무것도 성급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을 시각
사월의 네시를 네월의 사시라고 불러도 용서할게
세월아 네월아라고 주야장천 불렀던 기억을 가져오면 낯설지도 않지
계절의 우두머리가 4월에 자리했으니 대우를 톡톡히 해주려 해
너무 완벽해서 너무 연약할지도 모르니
약점보다는 틈새를 다독여 주자
가끔씩 4월에는 4시의 공기를 의식해서 마셔볼 거야
가장 새벽다운 시간이 4시니까
하루가 탄생하기 바로 직전의 시간이니까
어두운데 맑아지는 기분은 기분 탓만은 아니어서
아침 새보다 크게 입을 벌리고 공기를 들이켜 가글하고
뱉으며 어제 넘겨받은 끝말에 이어 하루를 지어봐야지
늘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꾼 름 늄 쁨 랑 럼으로 마무리되어 난감하지만
어김없이 4시마다 우리를 구출해 주지
4월이라고 도화지에 쓰고 보니 사방으로 떠나고 싶어지고
별을 그리려다 마음이 성급해지는 것 같아
4월에는 4시마다 무심코 그리던 것들을 그리워하기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