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통이 고통의 일종인 경우

챌린지 67호

by 이숲오 eSOOPo

당신의 눈에 지구가 반짝일 때


박 형 준



당신의 눈에

지구가 반짝일 때

당신을 들여다보면

거기 내가 있고


거울에 눈을 대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동공이 열려

속눈썹이 나무처럼

무성해지고


거울 속에서

내 눈을 바라보면

거기 글썽거리는

빛들 속에

당신이 서 있고




가장 긴 시를 쓰려다가 그만 가장 짧은 비문을 쓴다


손에서는 천혜향인지 한라봉인지 향이 배어 있다


유튜브를 열 때마다 바둑 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며 두 기사보다 심각한 표정이 된다


가사가 없는 음악은 제목을 어떻게 지을까


호러물은 대사가 심오하면 전혀 무섭지 않다는 걸 오늘 알았다 피가 스크린 바깥까지 튀어도 그렇다


수요일마다 화분의 위치를 옮기고 인형의 방향을 바꾼다 그들은 스스로 할 수 없으므로 주인이 있다


살다살다 우스꽝스러운 자가치료는 연고를 묻힌 면봉으로 항문에 바르기 위해 거울을 바닥에 두고 쪼그리고 앉아 손을 더듬으며 하는 치료가 아닐까


왜 모든 과일은
맛과 어울리는 색을 지녔을까


놀랍다


카톡 답장을 하루 지나 보내는 이는 친구목록에 없다 그 사이에 달려가서 그의 폰에서 나를 지운다


거울 속 피부트러블이 거슬려 새끼 손톱만한 메디패치를 붙이니 깜쪽 같다 어느 날에는 뻥튀기만한 크기의 메디패치가 나왔으면 하기도


엘리베이터 교체공사 하느라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일하는 기사분이 고생스러워 수고하시라 수줍게 인사했는데 반응이 없다 멋쩍어 다시 말하려다보니

양쪽 귀에 말뚝같이 튼튼한 귀마개가 박혀 있다


마음 전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