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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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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나의 입장에선 할 말이 많아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글은 말의 여백에 자리한다


쓰는 것은 기록의 영역보다 사용의 영역에 가깝다


못다 놓친 언어들을 사용하기 위해 글을 쓰고

못다 빗난 마음들을 바투잡기 위해 글을 쓴다


발화의 언어는 쓸쓰록 익숙함으로 수렴하지만

쓰기의 언어는 쓸쓰록 생경함으로 몸부림친다


침묵 속에서 스며나오는 언어는 글쓰기를 독박한다


말을 할 때와 글을 쓸 때의 마음의 근육이 다르다


둘 다 마음과 연결되어 있지만 '대로'와 '으로'의 차이


그래서 말을 그대로 옮겨서 글로 쓰는 것은 발로 하는 행위를 팔로 했을 때의 부자연스러움이 있다


소리로 다루는 언어들처럼 침묵으로 다루어야 하는 언어들이 있다


서로 성질이 다르므로 그 표현이 달라질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다가 눈으로 바뀌고 있다


이 풍경을 말로 해보고 글로 써 본다


말로 했던 것을 글로 옮겨보고 글로 쓴 것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이를 읽는 이와 듣는 이는 이 풍경을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을까


어느 방식이 수용자에게 사실적으로 혹은 감동적으로 전달될까


결이 다른 언어의 사용에서 글의 느리고 낯섦을 늘 선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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