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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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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글을 쓰면서 침묵을 배웁니다


너무 하고픈 말이 넘쳐 흘러 아무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순간 침묵은 펜이 되어 글이 됩니다


침묵은 내면으로는 현미경이 되고

세상을 향해서는 망원경이 됩니다


글을 쓰면서 침묵을 맛봅니다


침묵은 잘 가둬둔 어항 속 언어들처럼 유영하다가 언어를 산란하고 번식하고 짝짓기를 즐겨 합니다


그림의 여백이 작가의 적극적인 표현방식이듯

언어의 침묵은 화자의 격렬한 표현방식입니다


침묵이 언어의 부재가 아닌것은 당연합니다


허공을 가지는 것은

창공을 가지는 것은

생을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새를 날게하는 것이 됩니다



다시 엉킨 실을 풀듯이 침묵으로부터 언어를 한가닥씩 뽑아 봅니다


날카로운 언어 뾰족한 언어 엉킨 채 풀리지 않는 언어들은 폐기합니다


침묵은 언어를 정제하고 정화시킵니다


침묵 속에서 맑게 걸러낸 언어들을 한 모금 가슴에 머금고 가글해 봅니다


다시 글을 쓸 이유를 이렇게 침묵에서 건져 옵니다


여전히 언어는 발화 이전의 신세를 더 많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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