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95호
지붕 위의 구두
유 병 록
그러니까 어떤 힘이 염소를 끌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간 것이다 난간에 묶어두고 사다리를 치운 것이다
벼랑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다 망가진 뿔로 구름을 들이받으려 했을까 곡선의 시간을 지나오느라 한쪽으로 기운 발굽을 쓰다듬었을까
오후의 햇살 속에서 조그맣게 울먹이기도 했을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한뼘의 초원이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의 뒷발로 사다리를 밀쳐 낸 기억이 떠올라 흰 털들이 곤두설 때
이 세계를 들이받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빛나는 털을 가진 세계도 어두워질 때, 두고 온 이름들이 눈동자 속으로 절뚝절뚝 걸어들어올 때
노을빛이 스러질 때
반짝, 발굽이 빛났던 것이다
곧 빠져나갈 체온의 질감을 간직해두려고 염소는 빛을 구부려 매듭을 만들었던 것이다 캄캄한 길 나서기 전에 구두끈을 고쳐 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