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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나도 빌리처럼'을 읽다

삶의 시선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

by 이숲오 eSOOPo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중략)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에세이 '나도 빌리처럼'을 읽는 내내 쉼보르스카의 시를 나도 모르게 읊고 있었다


저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 지나고 나면 지금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46편의 에세이마다 줄곧 이렇게 외치는 듯 들렸다


어제의 나를 나답게 배신하고 싶어


아름다운 배신

어제의 안온한 나를 저버리고 오늘의 새로운 나를 만나는 배신

그것은 단 한 번의 불꽃같은 삶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가능한 덕분이다


그가 불어를 배우는 것도 모국어를 대신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가 첼로를 배우는 것도 청진기를 대신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가 발레를 꿈꾸는 것도 갱년기를 핑계대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가 작가를 꿈꾸는 것도 전문의를 대신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마음이 자꾸 저지르는 난동에 몸이 지혜롭게 반응하기로 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에도 아닌 것을 조곤조곤 공간을 옮겨가며 들려준다


이유있는 공간의 이동은 시간의 향기를 담아 저자만의 문학적 감수성으로 풀어낸다 (이 농도는 얼마나 절묘한가)


특히 이 책의 백미는 22번째 에세이 '파리공원의 가을'(이 글은 전문을 통째로 인용하고 싶을 정도다)

문단마다 수건처럼 짜면 시 한 편씩 뚝뚝 떨어질 것 같다

한 번을 제대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한 수 가르쳐 준다(정신이 번쩍 든다)


좋은 낭송은 나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 줄곧 말해 왔다

좋은 에세이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현의 절제미와 문체의 발랄함이 균형을 이뤄야 하므로 수많은 내적 퇴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에세이집은 등단한지 1년도 채 안 된 처녀작이라는 걸 무색케 한다


그는 개인의 일상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것이 한낱 저자 자신만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음을 여러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자칫 붓이 가는대로 쓴다는 편견을 지닌 수필이 저지를 수 있는 유혹와 함정은 다른 장르의 글보다 빈번해서 이를 피해 쓰려면 보다 큰 내공이 필요하다 수필은 일기도 아니고 르뽀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장마다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고 섬세하다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문장들을 첨예하게 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촘촘하게 자극한다


더 놀라운 점은 6년전에 묶인 지난 이야기임에도 현재성을 띤다


이는 이 책을 지금 읽어도 누가 읽어도 어디서 읽어도 당신에게 숨어있는 그 뜨거운 무언가를 추동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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