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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6. 2022

나의 초능력들 34

약속시간 : 내가 던진 예언에 대한 예의

잘 붙들 수 있어야 잘 묶을 수 있기에


시간에 대해 느슨한 태도는 치명적이다. 약속 장소에 늦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경우 단순 지각자가 아닌 자기 통제력을 의심받는다. 변명으로 방어해야 하고 만남의 리듬이 흩어지고 무의식적으로 운명에 책잡힌다. 조금 늦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반문한다면 미리 도착한 상대와의 암묵적 합의로 해소할 사소함으로 치부해온 습관 탓일 게다. 이러한 늦장 만남은 목적이 사적이거나 희박할수록 빈번해지는데 정확하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이유가 빈약한 경우에 그러하다. 서로가 묵인한다면 사실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라도 만남의 의미를 남다르게 부여한 상태라면 약속의 외연인 만남 자체보다 요소인 정한 시간과 장소의 정확한 성사에 의미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약속을 한다는 것은 가까운 언젠가에 당신을 만나겠다는 간단한 선언이 아니다. 미래의 어느 시간과 어느 장소에 반드시 나는 있겠다는 예언이다. 전자의 판단은 상대적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행동 패턴을 의식해 자신의 행동형태를 결정한다. 약속의 중요도에 따라서 유연 해지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개별적이다. 상대보다 자신과의 약속임을 부각하고 제시간에 혹은 미리 가 있는 것이 상대에 앞서 나를 존중하는 행위라고 판단한다. 또한 이러한 철두철미함은 내가 이미 과거에 말해놓은 경건한 예언에 임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약속한 장소는 붙박여 움직이지 않으나 약속한 시간은 흐르고 있다. 장소는 보이나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우선 움직이지 않는 장소로 몸을 옮기는 것부터 해보지만 정확한 그 시간이어야 의미를 가진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기에 기다리는 자보다 기다리게 하는 자의 시곗바늘이 더 빠르게 회전한다. 평소의 시간들은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보이지만 붙들어 두는 순간부터 시간은 금쪽같은 성질로 변하게 된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루면 격상된 시간의 가치를 누리게 된다. 시간을 잘 붙들어 거머쥐는 자만이 시간에 휘둘리지 않는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약속시간에 대해 진심을 쏟으려는 것이다. 시간을 잘 지켜야 성공한다는 진부한 말보다도 약속시간을 앞두고 가지는 설렘의 감정이 몸을 더욱 부지런하게 만든다. 가치는 객관적인 대가보다 그것을 겪는 감정의 모양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서두르고 싶지 않은 약속일수록 더 일찍 나선다. 여유 있게 가는 걸음에 남다른 기운이 깃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환대할 기분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약속 시간을 가벼이 다룰 수가 없게 된다. 과거의 내가 예고한 미래의 순간으로 나는 운명처럼 시나브로 걸어가는 기적을 맛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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