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Aug 29. 2022

나의 초능력들 37

경계에서 존재하기 : 만물의 가능성이 움트는 곳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이 바로 그곳


경계를 경계하지는 않으나 경계의 존재는 매번 난감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순간들의 연속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경계가 분명한 것들도 있지만 그것은 시간이라는 숫자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자연의 일들은 하나같이 경계가 모호합니다. 얼굴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어디까지가 눈이고 어디까지가 볼이고 어디까지가 입인지 선을 정확하게 그어 구획 짓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눈이 어디에 있는지 볼이 어디 부분인지를 짚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그러한 무수한 경계 구간들이 겹치고 겹쳐서 얼굴을 이룹니다. 서로 자신의 구역을 팽팽하게 지켜나가면서 경계도 허락하죠. 대부분의 표정들은 경계에서 만들어집니다.


공간에서의 경계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자연에서의 경계는 그 이름들이 없는 경우가 흔하지만 공간에서는 경계의 지점에 이름이 달려 있습니다. 문이라든가 창이라든가 벽이라든가 건축물에는 그 역할을 가진 경계의 이름들이 있어서 관문처럼 지나며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실감합니다. 경계의 지점은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인상과 느낌이 달라서 새롭습니다. 밖에서 바라보는 창은 건물의 한 부분으로 읽히지만 안에서 바라보는 창은 세상으로의 작은 채널이 됩니다. 건물이라는 공간에서 경계 짓는 부분이 없어진다면 공간 안에 있는 이의 감정을 불편하게 압박하고 공간 자체를 다른 공간과의 연결이 단절된 공간으로 이해해 답답할 것입니다.


경계는 사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 있음의 주요 증거들은 인간, 시간, 공간이 끊임없이 공존하고 있음일 텐데요, 이 세 가지 개념을 이루는 단어에 공교롭게도 사이를 의미하는 한자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사람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시간과 보이는 공간도 사이 안에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경계는 하나로는 생길 수 없기에 다수의 다름과 낯섦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것에는 경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계는 불가피하며 경계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경계를 통과하거나 경계에 있을 때 불안해합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이 안절부절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그때야말로 자유로운 상태이며, 유연한 몸짓이 가능하거나 선택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무엇도 아닌 상태가 아닌 무엇도 가능한 상태인 거죠. 다소 안정감은 떨어지나 한 단계 껍질 벗음이나 계단식 성장이 가능한 지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카를 가지고 있는 것과 스포츠카를 살 재화를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는 선택입니다. 경계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가능성을 강력하게 키우는 것에 집중함을 의미합니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경계에서 존재하며 즐기는 것입니다. 가끔은 경계의 그곳이 주변의 공간들보다 높게 자리해 각각의 공간의 특성을 잘 구분하고 장점을 잘 판단해서 서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안목까지 가지게 됩니다. 한 공간에만 있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사이의 통찰을 한 번이라도 맛보았다면 경계에서 노니는 일이 생각보다 유쾌하고 신나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