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Aug 28. 2022

나의 초능력들 36

가르치고 배우기 : 평생 하는 생존 행위

배움과 가르침은 뫼비우스의 띠


어디선가는 가르치고 어디선가는 배우고 있다. 나 자신이 부족해서 배우고는 있지만 누구보다 잘 나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이른 관심이 있었을 뿐이고 참고할만한 지식이 전무한 미개척 분야다 보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퍼스트 펭귄이었을 뿐이다. 강의를 준비하며 기발한 기법과 개념의 깨달음으로 장만된 자만심이 정작 수업이 진행되면 다른 놀라움으로 겸허하게 탈바꿈하게 된다. 배움의 수용자를 통해 더 많은 부분들을 발견한다. 고착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면 준비부터 전달까지가 배우는 과정이다.


배우는 것 또한 능동적인 가르침의 생리와 비슷하다. 조금 차이를 보인다면 가르치는 경우 배우는 이의 눈높이와 수학능력을 고민한다면 배우는 경우는 자신의 학습능력에 맞춰 준비한다는 것이다. 배우기와 가르치기는 앞뒤가 맞물려 돌아가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배우는 동안 자신을 재차 가르치기도 하고 가르치는 동안 상대나 스스로를 통해 배운다.


가르치는 것의 범주는 어떠한가. 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해 정리 전달하는 것을 1차적 가르침이라면 기성의 지식체계에 나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얹어 전달하는 것이 2차적 가르침이다. 거기에 덧붙여 다른 분야와의 통섭과 융합을 유도하고 응용 가능하도록 전달한다면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으며 더 나아가 인성과 삶 자체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을 전달한다면 이상적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의 자세는 어떠한가. 한 번 배움을 의탁한 스승이라면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우선 믿는다. 판단은 추후로 미룬다. 신뢰 없는 배움과 존경 없는 교육상황이 건전하고 건설적인 결과를 내지 못한다. 성실하게 수용해야 가르침의 극대치를 끌어낼 수 있으니 배움의 태도는 절대적이다. 서로가 적극적으로 인터렉티브 해야 교육의 시너지가 난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가르치고 배우기를 지속하는 것이다. 가르치겠다는 것은 감성의 유연성을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이고 배우겠다는 것은 이성의 무뎌짐을 경계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전 15화 나의 초능력들 3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