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조간신문을 양손으로 펼쳐보다가 사회면에서 반으로 접어 한 손에 쥔다. 그러고는 도수가 있는 안경을 귀에 걸고는 미간을 구긴다.
문화면에서만 보던 시낭송 관련 기사가 사회문제로 다뤄진 것이니 관심이 간다. 최근 들어 유난스럽게 언급되고 열광하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박수를 칠 때마다 노인은 그것이 틀린 것의 징후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기사는 대담 형식을 그대로 옮겨실었다. 국문과 교수와 문화 비평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걸 두 사람의 사진도 그걸 증명한다. 손동작과 표정이 정치면 사진과 다르지 않다.
-한동안 침체되어 있는 음악시장에서 시낭송으로 인해 폭발적인 흥행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는 시낭송은 오히려 시의 고유한 품위와 가치를 훼손하고 왜곡하죠.
문화비평가는 시낭송을 옹호하고 국문과 교수는 반대하고 있다. 둘 다 명망 있는 그 분야의 명사기에 그 입장이 주목을 끈다. 노인은 양측 주장에 모두 수긍이 가지만 부분적인 반론도 하고 싶었다.
시낭송을 긍정하는 쪽의 의견에서 시낭송의 역할을 협소하게 보는 건 못마땅하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과 건축, 무용 등에도 영향을 미친 사례가 차고 넘치는 걸 노인은 알고 있다. 무엇보다 문학 자체에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는 문화비평가가 실망스럽다. 반대쪽도 불만이다. 시의 고유한 품위를 낭송으로 훼손한다는 점은 아무래도 낯선 표현방식에 있는 거 같다. 낯선 것이 다르게 보이나 틀린 것은 아니다. 젊은 시인들의 시들이 파격과 실험으로 진화하고 있는 걸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도 그러한 시를 보면서 옳지 않다고 느낀 적이 없다. 이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시와 낭송은 그 지향점과 표현 방향성이 일치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확신했다. 우려와 기대를 비유를 들어가며 두 대담자는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웠다. 노인은 신문의 절반을 찢어 반으로 접은 뒤 책상 한편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