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Mar 10. 2023
어쩌다, 시낭송 061
자연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I 자연에 가까운 것은 겹쳐졌을 때 더 놀라운 작용을 한다
접시에 담긴 사과와 키위가 닮은 듯 다르다.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사과, 껍질을 벗겨야 하는 키위.
견고한 사과, 물컹한 키위.
씨앗을 가운데 품고 있는 사과, 넓고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키위.
장미과의 사과, 다래과의 키위.
늦여름에 따는 사과, 늦가을에 거두는 키위.
새콤하고 달콤한 사과, 시고 달콤한 키위.
달콤함은 과일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사과를 먹고 나서 키위를 먹어본다.
사과의 달콤함이 키위의 달콤함을 해치지 않았다.
키위를 먹고 나서 사과를 먹어본다.
키위의 달콤함이 사과의 달콤함을 간섭하지 않았다.
인위적인 단맛이었다면 분명 한쪽의 연약한 단맛이 방해받았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단맛은 각각의 고유한 단맛을 지킬 줄 안다.
과일마다의 모양만큼이나 과일의 단맛들은 개성을 자랑하며
서로의 단맛을 질투하지도 않고 공격하지도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다른 이와 어울려졌을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글쓰기도 그렇다.
나의 지난 글들과 나란히 읽었을 때 글쓰기의 한계가 비로소 드러난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조화를 이룰 것이고
진정성의 글쓰기라면 자연스럽게 읽힐 것이다.
II 의자와 글쓰기
의자는 누군가 앉아 있을 때 의자의 기능을 하는 것인가
빈 의자일 때 누군가 앉을 수 있는 쓸모를 가지는 것인가.
글쓰기가 의자와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을 쓰고 있을 때가 글쓰기의 전부 같지만
글을 쓰지 않을 때가 글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간이지 않은가.
마치 과격한 운동을 할 때보다 운동을 쉬고 있는 동안에
운동으로 자극받은 근육이 예쁘게 만들어지듯이 말이다.
글쓰기의 여백은 빈 의자 같다.
비어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빈 의자를 바라보며 불안해하지 않듯이
글쓰기를 하지 않는 순간을 조급해하지 않아야 한다.
III 활자에, 문장에 스며들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스며드는 것_안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