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글 쓰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는가?
아무것도 쓸 것이 없거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모르는 그대여.
나 또한 매번 그 올무 같은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니 그 원인을 같이 한 번 궁리해 보세나.
원인이라고 화두를 던졌으나 나의 접근방식은 원리를 찾는 것에 더 가까울 듯하오.
대체로 그런 마음이 드는 때에는 무턱대고 쓰겠다고 덤비는 경우가 대다수였소.
우리는 먹는 문제에 관하여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는가.
몇 끼를 챙기지 못해 허기에 허덕이다 이 때다 싶어 가장 맛난 메뉴를 먹으리라 다짐하고는 엉뚱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불쾌한 기억말이오.
그야말로 장고 끝에 악수를 둔 바둑기사 같은 모습과 진배없었지.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으면 우리는 선택의 딜레마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아예 선택 자체를 포기하는 무기력함을 드러내기도 한다네.
그대나 나나 우리는 쓸 것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것으로 겉으로 표현은 하지만 사실 수많은 쓸 거리에 대한 결정장애를 일시적으로 가진다는 것이지.
세상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란 없는 것이라네.
세상에 가장 잘 쓴 글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고.
너무 글쓰기의 공복을 느낀 후라면 가장 '글답게' 쓰고 싶은 욕망이 날마다 글을 쓸 때보다 더 크게 작동하지.
그것이 더 글을 못 쓰게 하는 글변비에 걸리게 한다네.
글이라는 것이 어찌 날마다 명문장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게는 삼진왕이라는 오명도 함께 있는 걸 그대도 알지 않는가.
내 친구 중에는 수줍고 평범한 인상에 그다지 매력이랄 것도 없는 녀석이 있는데 그를 만날 때마다 그의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지.
무려 7번이나 미모의 애인이 바뀌는 것을 보며 나는 비결을 물었다네.
그 녀석이 그러더군.
699번의 무모한 시도가 있었다고.
야구로 환산하자면 그다지 타율이 좋은 것은 아닌 거지. 모지리!
꾸준한 것들은 늘 어떤 획기적인 결과물들을 거머쥐더란 거야.
아무것도 쓸 것이 없는 날에도 브런치 앱을 켜고 키보드에 열 손가락을 얹고 염불이라도 외는 거지.
그러면 가끔씩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잠들었던 영감님이 눈을 비비고 일어나 나에게 어슬렁어슬렁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기도 할지 누가 아나?
나의 글쓰기에 대한 공복과 무능과 의지 없음이 때로는 나의 처음을 돌아보게 하더군.
처음에 글이 안 써지는 원리를 이야기하자고 거창하게 말을 떼놓고 보니 빽빽한 그림 속에 숨어있는 월리만큼 그대를 난처하게 만들었는지 미안한 마음이 드네.
아무튼 그대나 나나 글 쓰자고 옆구리 콕콕 찌른 이는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아니었나?
그러니 원망 말고 다시 한번 기운 내 보세나! 우리!
얼마 전만 해도 겨울이었는데 오늘은 봄을 너머 초여름에 가까운 온화한 날씨다.
하나의 계절 중에 있을 때보다 두세 개의 계절이 교차하는 이 시점에는 옷을 고르는 것부터 커피를 아이스냐 핫이냐를 선택하는 것까지 몸의 안과 밖의 온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날씨는 매년을 경험해도 항상 적응이 서툴고 지난 계절보다 다가올 계절을 선호하게 된다.
더 나은 계절은 없을 터인데 환절기에는 앞선 계절의 옷을 입고 다가올 계절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경계에서는 건너가는 도중이기에 발걸음도 마음도 분주하다.
글쓰기는 늘 이러한 경계의 걸음걸이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빨랑카 palanca.
https://youtube.com/watch?v=iuvwB1ajOos&feature=shares
다만_김동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