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작을 다시 읽다
풋풋하다.
2년 전 이맘때즈음해서 내 생애 첫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마지막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그 많던 행사와 강연들이 서로 언약이라도 한 듯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 가장 못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독서야 그럭저럭 해왔지만 책의 저자가 된다는 것은 관중으로 있던 내가 선수로 운동장에 뛰어들어가는 일처럼 낯설고 두려웠다.
작가의 어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는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일처럼 느껴왔기에 더욱 그랬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출간한들 누가 돈을 주고 사서 읽을까.
차라리 열 시간을 말로 강연을 하라면 하지 무슨 글이람.
벼랑 끝에 서니 목소리가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간의 나의 마인드를 종이 위에 낱낱이 적어보는 일 밖에 없었다.
일기도 아니고 보고서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닌 이상한 글쓰기.
특별한 직업군에서만 하는 말하기를 대중들에게 쉽고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목표로 다시 써 내려갔다.
그해 가장 무더운 날에 세상에 나의 첫 책이 나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매일 출석해서 내 책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누군가 내 책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는 순간의 희열은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매주 내 책이 놓인 위치가 바닥에서 위로 점점 올라가더니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기도 했다.
그해 인터넷서점에서는 자기 계발 부분 서적 11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상한 경험도 한다.
예술에세이로 썼는데 자기 계발도서로 분류된 것이 속상했지만 교보문고 입구와 가까워 오히려 유리한 판단이었다.
어느 광역시 예술가와 건축가 모임에서 출간기념 작가와의 만남도 주선해 참석하기도 했다.
잠깐 우쭐한 기분이 들었지만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는 책임감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책을 펼쳐보니 낯이 뜨거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설익은 문장들, 빼고 싶은 인용들, 더 나은 표현도 있었을 텐데... 후회, 후회, 후회가 밀려왔다.
밤을 새우며 뜨겁게 써 내려간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 읽고 싶지 않은 문장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무수히 지운다고 지웠는데..
책의 판매경로와 구입 독자들의 연락처를 알 수 있다면 한 분 한 분 연락해 용서를 청하고 책을 수거하고 싶은 마음이 백두산 같았다.
잠시 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마음이 까마득할 때 보라고 첫 번째 책을 쓰는 거구나.
글쓰기가 흔들릴 때마다 나의 처녀작은 나에게 아름다운 채찍이 될 것 같다.
II 처음부터 서툶과 잘 지낼 거야
예쁜 꽃들도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씨앗이었지.
아리따운 저 소녀도 처음에는 머리털도 없었지.
처음이 없으면 지금도 없는 거지
처음이 능수능란할 수 없지.
처음은 처음다워야지.
처음이 늘 말하지.
닥치고 시작해!
III 너는 언제 피었니
해당화_한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