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에는 말의 필터를 교체해 볼까요
한 반을 통째로 바꾸던 교실도 없고
교탁 밑에 넣어둔 개구리로 놀래줄 담임선생님도 이제는 없으니.
오히려 세상이 거짓말 같아서
거짓말 같은 영화배우의 죽음이 현실이어서
만우절에는 차라리 정직한 말을 찾아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누구에게나 허락받은 참이라는 말이 존재할까 가만 생각해 본다.
가볍게 친한 이들에게 속이고 장난치는 일인데 대부분 언어로 하는 놀이다.
프랑스에서는 장난에 잘 속는 이를 '푸아송 다브릴' poisson d'avril :4월의 물고기'라고 놀리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바보같이 속는 이를 '뻐꾸기'라고 놀린다.
기원도 불분명한 만우절은 기록상으로 15세기 이야기에서 발견되며, 16세기 프랑스 자료 중에서 만우절 농담 같은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 그 기원을 추정할 뿐이다.
정보가 신속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즉각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말에 의존했을 것이다.
평상시 신뢰가 있었던 친구가 갑자기 거짓말을 하면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바탕 웃으면서 봄의 시작을 서로 축복했으리라.
그렇다면 현대에 만우절은 어떤 날이 되면 좋을까.
나의 언어적 필터를 점검하는 날로 삼으면 어떨까.
내가 한 말들의 순도를 살피고 조율하는 날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다.
4월이 되었으니 반가움으로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어 내려가야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백 년이나 지난 이 시를 읽어야지
한 줄씩 읽어도 일 년을 넘겨 읽을 이 시를 읽어야지.
'손안에 든 먼지만큼이나 공포'를 수시로 만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