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시치미 시낭송 모임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달리 격정의 난상 토론장이었다. 지난번 리더가 시낭송 카페에서 예고한 낭독과 낭송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서 불붙은 것이다. 여러 목소리가 겹치고 엉켜서 기억을 더듬어 중요 부분만 여기에 정리해 본다.
-낭송은 낭독의 상위 개념이 아니라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외우냐 외우지 않느냐의 기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외워서 연기하는 연극 배우는 연기이고 대본을 보면서 라디오 드라마를 연기하는 성우는 연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것도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대에서 육체를 드러내고 연기하는 것과 부스에서 드러내지 않고 연기하는 것의 차이일 뿐이죠.
-그럼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시선에 있다고 봅니다. 낭독은 시선이 텍스트에 있는 반면 낭송은 청중을 향해 있죠. 물론 제2의 시선은 둘 다 이미지로 향합니다. 이는 단순한 외형상의 차이뿐 아니라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낭독은 독백의 언어이나 낭송은 선언의 언어, 고백의 언어입니다. 낭독과 낭송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번 시낭송대회의 본선 방식이 낭송과 낭독을 동시에 치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기존의 낭송대회는 오로지 자신이 외운 한 작품만을 무대에서 선보이는 방식입니다. 이 대회는 전통적으로 낭독과 낭송을 동시에 심사하는데요, 이는 낭송만으로는 출전자들의 기본기와 감성의 정도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낭송만으로도 감성이 표현되지 않나요?
-어떠한 기준점을 정해놓고 반복 훈련한 감성은 박제된 감성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감성의 특성은 '현재성'에 있다고 보는데요, 대체로 낭송대회에서의 낭송은 하나의 롤모델을 두고 거기에 가깝게 구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스스로도 무대에서 시에 대한 감동을 맛보지도 못한 채 내려오기도 합니다. 처음 시에 대한 감흥이 무대에 서는 순간까지도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내 안에서 꿈틀거려야 하는데 말이죠. 이미 낡아버리고 익숙해져 버린 낭송은 고운 소리만 남은 채 공허하게 휘발되고 맙니다.
-낭독의 어떤 부분이 평가의 변별력을 주나요?
-낭송도 그렇지만 낭독의 기본은 읽기입니다. 의미를 전달하는 능력이 전제됩니다. 낭송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는 반면 낭독은 아우라를 형성하는데 적합한 방식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낭독은 독백에 가깝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서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시선이 활자에 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눈은 낭독자 내면으로 향하고 있는 거죠.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가장 은밀하고 고귀한 부분을 길러내어 청자에게 들려지는 것이 아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드러냄의 낭송과는 달리 낭독은 감춰짐을 엿보게 하는 거죠. 완전히 방향성이 다릅니다. 이 낭송대회는 이 부분에 주목한 거죠. 두 가지 능력이 균등해야 시낭송가로서의 자격이 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듣고만 있는 멤버들도 끼어들어 질문과 자기 생각들을 던졌고 리더는 그것을 받아 정리해주었다. 가장 이해가 될 때가 어쩌면 가장 헤갈릴 때일지도 모른다. 이해를 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멤버들을 보고 리더는 상당 부분 오해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어떠한 충격이 가해져야 비로소 기존의 틀의 틈 사이를 벌려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니 너무 안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낭독이 낭송으로 가는 하나의 중간 단계라고 여기는 편견만 바꿔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