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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동네 허름한 국밥집에서 내놓은 설렁탕 한 그릇에 깍두기 한 접시 같은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부지런히 이곳저곳 열심히 걷다가 뛰면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직장인의 뒷모습 같은 저녁달이 떠오르고 있다.
아 가냘퍼라
매번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아르바이트생의 소소한 우유부단을 질책하는 어느 사장의 인색한 주머니 같은 세월이 흐르고 있다.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가 지워진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겉만 멀쩡한 현대인들은 스스로 오류 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한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누락된 집단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수고만 어루만지느라 콧잔등이 반질반질 윤이 나다 못해 구멍이 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사라진 너와 나 사이에서는 시간이 뒤엉키고 공간이 쪼그라들다가 나는 너인 듯 밀어내다가 너는 나인 듯 지워버린다.
아 가냘퍼라
점점 가늘어지는 관계의 두터움이여!
점점 사회는 투명해진다.
철저한 검열 시스템 덕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얇아지고 얇아지다가 마침내 우리 자체가 투명해지기에 이른다.
깊이가 없으니 깊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전에는 열 길 사람 속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 속이 되었다.
너무 자잘해진 마음들을 정교해졌다고 착각한다.
작은 부딪힘에도 서로 악다구니를 하고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사과를 강제로 요구한다.
용서를 구하는 일은 스스로 기획하고 발휘하는 것이 순리다.
외부로부터 청해서 나오는 용서는 오염이 되어 받아도 받아도 썩 개운치 않다.(그것마저도 귀한 세상이니 이 또한 가냘프다!)
상대가 청하기 전에 발 빠르게 하는 것이 사과이지만 이것을 힘의 대결로 본다거나 나약한 패배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아 가냘프다.
이런 마음들이 가냘프고 가냘픈 것이다.
불쌍하다는 가냘픈 것의 최후일 것이다.
불쌍은 글자만 보아도 그야말로 불쌍한 형상이다.
쌍(서로)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니 부조화의 극치, 옹졸함의 최고봉인 셈이다.
그 이전 단계에 있는 상태를 나는 가냘프다고 본다.
그저 외면의 몸집이 아닌 내면의 두께가 한없이 얇아지는 상태를 가냘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인간만이 아닌 관계에서 깃털보다 가벼운 상태도 가냘프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오! 나를 비롯해 나를 둘러싼 온갖 가냘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