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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01. 2023

꿈이라는 껌

0323

껌 좀 씹어본 사람들은 안다.

씹을수록 단맛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나타나는 니맛도 내 맛도 아니었던 그 맛을 기억한다.

입이 궁금해서 씹기 시작하던 껌은 어느새 리드미컬하게 턱의 요동과 함께 말랑해지면서 질겨진다.

스펀지처럼 말아 쥐고 있던 당분은 여러 차례 치아끼리의 주고받기를 통해 떨어져 나가 홀가분해지고 그 슴슴해진 상태를 혀가 받아 풍선을 만들었다 이내 터뜨린다.

자잘한 공기주머니를 치아 사이에서 만들었다 터뜨리는 건 소리를 만끽하기 위함이고

커다란 공기주머니를 잔뜩 부풀려 터뜨리는 건 향기를 음미하기 위해서다.

전자는 불량과 반항의 표현으로 후자는 명랑과 장난기를 드러낸다.


누구나 꿈을 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껌처럼 대한다.

어떤 이는 이미 씹기 시작한 껌을 버리지 못해 자기 전 책상 밑에 몰래 붙여놓고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딱딱해진 껌을 씹으며 입 안의 혀처럼 말랑해질 때까지 씹는다.

언제부터 길들여졌는지도 모를 꿈이 내 몸 어딘가에 들러붙어 나를 통째로 질겅질겅 씹어댄다.

씹다 보면 껌과 내가 하나 되어 어디까지가 나인지 몰라 씹다가 혀를 씹기도 한다.

꿈을 껌처럼 씹다가 보면 유선형으로 갸름했던 내 마음도 오래 저작운동을 한 턱처럼 네모랗게 굳어진다.

학창 시절 야자시간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들고 와 풀 수 있냐고 묻는 친구에게

'그건 껌이지!'라고 말한 것을 오해해 서로 엉겨 붙어 주먹다짐을 했었다.

서로의 멍든 관자놀이를 삶은 계란으로 문질러주며 친구는 말했다.

'그건 꿈이지! (너한텐)'라고 들었단다.

누구에겐 껌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겐 꿈이 되기도 하는 수학문제로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다.

한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씨엠송도 듣기에 따라서는 다르게 들리기도 했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꿈이라면 역시 늦게 꿈~!'

어쩌면 어릴 적에 꾸는 꿈보다 나이 들어 꾸는 꿈이 진짜 꿈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인생이 무료하다고 느껴지는 때에는 자꾸 껌을 찾듯이 꿈을 찾게 된다.


껌은 왜 생겨났을까.

삼키지도 못하고 입 안에서만 굴리다가 뱉어내는 

음식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닌 물질.

일시적으로 내 몸에 머물다가 떠난다. 

씹는 동안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노심초사.

꿈과 너무나도 닮은 껌이다.

현실로 끌어 안기에는 너무나도 이상적이고

꿈을 머금고 있으면 아무것도 함께 씹을 수 없는 진퇴양난.

껌을 꾸고 꿈을 씹는 혼란의 과도기를 우리는 즐기기도 하고 고통받기도 한다.

씹을수록 허기를 느끼는 껌처럼 

꿀수록 현기증을 느끼는 꿈이다.

세상에 뿌려진 껌의 종류보다 많은 내 안의 꿈들을 헤아려보는 오월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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