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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30. 2023

역설의 뒷맛

0322

세상은 온통 아닐 것 같은 것들로 그럴듯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불가능이 가능을 잠재우고 쓸모없음이 쓸모들을 무색하게 하기도 한다.

동물이었다면 가장 은밀하고 부끄러운 부분이 식물에게는 얼굴이 되는 꽃도 그렇고.

부레도 없이 수중을 활개 치며 온전하게 부레를 장착한 물고기들을 지배하는 상어도 그렇고.

실용적이지 못한 철학을 공부한 이가 세계적인 명문학교의 교장이나 총장이 되는 것도 그렇고.

(실용적인 학문을 장악하고 통제가능한 도구로서 실용으로만 무장된 사고는 한계가 있기에)

어쩌지도 못하고 인생의 벼랑 끝에서 완벽한 성공으로 전환되는 사례들은 이 세계가 역설의 비밀을 품고 조금씩 인간 모르게 흘리고 있다는 추측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역설이란
결국 '마땅히' 그리 해야 할 것이라는 느낌이
현실과 일으키는 마찰이다 
|리처드 파이만|


남보다 빠르게 달려간 후 둘러보니 가만히 서 있었던 경쟁자가 나보다 앞에 서 있기도 했던 경험이 특별하게 운이 없거나 우연으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니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흘러간다는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은 세상의 잦은 역설로 인해 그 자리가 위태롭다.

쓸모 있음은 하나의 질서를 부여한 인위적인 상태이다.

가만히 놔두면 그것은 무질서로 점차 이동해 간다.

누구나 재화를 모으고 축적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오히려 손해를 보면서 성장을 하기도 한다.

환경 투자를 한다거나 통 큰 기부를 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무질서를 질서로 옮겨놓는 형태다.

그야말로 물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광경이고 흙탕물이 맑은 샘물로 탈바꿈하는 형세다.

실제로 이런 역엔트로피의 법칙은 역설의 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베풀면 부자가 된다

이런 말들은 쉽게 실천하기 어렵지만 그 말의 효과를 의심하는 이들은 드물다.


역설의 뒷맛은 오묘하다.

기꺼이 덤벼들지 못하게 하는 아우라를 지닌다.

그러나 역설의 맛을 제대로 음미한 이는 역설에 중독되고 만다.

세상이 당연함에 익숙해질수록 역설은 그 가치를 더해가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를 바꿔놓은 순간이나 성장케 한 그 타이밍에는 어떤 역설이 작동했던 것 같다.

완고한 누구에게도 자신만의 역설을 가지고 있다.

개똥철학과 지론 너머의 역설을 건전하게 품은 자가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농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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