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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03. 2023

고치다 보면

0325

두 번째 책의 원고를 교정하고 있다.

출판사와의 계약과 함께 최종 원고를 넘기기 위한 마지막 검토 중이다.

단순히 맞춤법만 솎아 내면 끝나는 여유로운 작업이라 예상했는데 소리 내어 읽어나가자 거칠고 성근 문장이 혀에 엉키고 거슬린다.

이런 식으로 점검하다 보니 어제는 원고지 천 매 중에서 고작 이 백매밖에 진전이 없었다.

마음이 좁쌀만큼 조급해진다.

게다가 출판사 대표로부터 기대에 찬 격려와 칭찬으로 위장한 독후 소감을 들은 후라 부담이 양 어깨에 쌀 가마니를 올려놓은 기분이다.

어쩌랴. 이 또한 작가의 숙명인 것을!


고치다 보면 맑아질 것이다.

그 혼탁했던 문장들의 순도가!

고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 혼란스러웠던 글쓰기의 비밀을!

고치다 보면 깨달을 것이다.

그 중언부언의 삶을 부둥켜안고 살아온 나의 어리석음을!

고치다 보면 사라질 것이다.

그 써야만 했던 문장 사이에 숨어있는 아름답기만 한 문장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지지 않으려 이렇게 애쓴다.

두 번째는 늘 위태롭다.

모든 위기는 비교대상의 등장에서부터 발생한다.

처음에는 그저 세상에 들이밀었지만 두 번째는 '이전의 나'라는 비교대상을 원치 않아도 가지게 된다.

전보다 얼마나 다른가에서부터 뛰어넘는가까지.

괄목상대의 여부가 관건이다.

과연 이번 작품이 눈 비비고 볼 정도로 성장했는가라는 질문까지 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잠이 깊어지지 못한다.

오늘은 스마트폰의 창을 굳게 닫고 셔터를 내린 채 집중하기 위해 마음속 절간으로 들어가 칩거해야겠다.

글을 쓰는 건 나를 가두어 거두는 일이다.

날마다 글을 쓰는 건 써야 작가기에 호칭을 부끄럽고 초라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는 일은 그 지난했던 두 번째 여정을 마무리하는 신성한 행위이다.

지금의 진통은 달콤한 고통이다.

책이라는 권위를 가진 생명체를 품은 자만이 느끼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한 문장씩 정성껏 다듬으며 순조로운 출간을 위한 태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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