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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04. 2023

감정의 사용

0326

꺄르르르르르.

버스 앞자리에 앉은 두 소녀의 대화 사이에는 웃음소리가 빼곡하다.

듣는 내가 숨 가쁘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들의 목젖을 춤추게 하는지 잠시 엿들어보니 오히려 싱거운 주제였다.

말의 내용보다 그녀들의 태도가 흥미롭다.

둘은 눈을 수시로 맞추고 상대의 말에 집중하다가 적절한 반응으로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듣는다.

소녀들은 감정을 고스란히 주고받는다.

너무나 당연한 대화에서의 감정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대화에는 감정은 사라지고 성질만이 남게 되었다.

감정대로 말하면 이해할 화제들도 성질대로 말하다가 오해로 치닿는다.

각자의 솔직한 감정을 가리고 비루한 성질로 얼룩진 대화가 많아졌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말들을 배설하고도 허전하고 외로웠던 귀갓길이 아니었던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소녀들이 헤어져 걸어가는 갈래길에는 우정 가득한 향기를 풍기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감정적'이 나쁜 것이지 '감정'은 중립적이다.

마치 '권위'와 '권위적'이 판이하게 구분되듯이.

언제 감정을 다해 말해 본 적이 있는가.

더욱이 내 안의 가장 곱고 여리디 여린 감정으로 상대에게 말해 본 적은 있는가.

흔히 마음을 다한다는 건 어쩌면 감정을 다한다는 것일 게다.

'성질'은 던지고 달아나는 비겁한 개구쟁이 같다.

무책임하고 대책 없다.

감정은 나오는 순간 상대의 산을 거쳐 내게 돌아오는 메아리가 된다.

그것의 반복행위가 소통이라 부를 수 있다.

감정의 대화는 부드럽게 흐르는 강물 같고

성질의 대화는 늘 맥락 없고 정처 없다.

감정에 충실한 대화는 적은 대화량에도 많은 느낌을 가지고 여운을 남기지만

성질에 성실한 대화는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도 서로의 기억에 쪽지 한 장 남기지 못한다.

그대는 그대의  감정의 팔레트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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