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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05. 2023

비가 내린다

0327

일 년 중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 얼마나 될까.

장마 기간에도 잠깐은 멈추다가 퍼붓는데 오늘은 하늘이 작정을 했다.

집 안에 꽁꽁 숨어있던 세상의 어린이들이 오늘만을 기다렸을 텐데.

곳곳에서 외부 행사들이 취소되었다는 (어린이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비보가 들린다.

상대적으로 실내 놀이공간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 같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어린이날 매직패스 가족권을 60만 원에 구입하겠다는 마음 급한 부모들의 글이 다투듯 올라왔다는 해외토픽 같은 기사글도 보인다.

크리스마스에는 함박눈이 선물이 되겠지만 어린이날에는 물폭탄이 반가울 리 없다.

오늘 내리는 비는 어린이들의 원망을 듣는 비가 될 것 같다.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들리는 비는 우산이 필요한 비다.

빗소리는 내리는 도중의 소리가 아닌 내린 후의 소리다.

출발을 알리는 것이 아닌 도착을 선언하는 소리다.

비는 내리는 중에 보이고 내린 후에 들린다.

소리를 내는 것들은 살아있는 듯 느껴진다.

속삭이거나 

고함치거나 

읊조리거나 

한숨 쉬거나 

비는 자신의 등장에 어김없이 소리를 장착한다.

두 개의 어긋나는 부조화가 하모니를 이루고 음악적인 영감을 주는지 눈 노래보다 비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비는 추억을 타고 사랑을 타고 산을 타고 추억을 타고 가서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과 조우한다.

눈은 내린 후 멈추어 사라지지만

비는 내린 후 흐르다 고여 모인다.

눈은 화려하게 등장해서 지저분하게 흔적을 남기고

비는 번거롭게 등장해서 세상을 맑게 씻어낸다.

눈보다 비의 가성비와 기능이 더 탁월하다.

어릴 때에는 눈이 좋았으나 어른이 되니 비가 좋다.

비가 내린다.

어느 누구도 피해가 없는 선에서 계속 내렸으면 좋겠다.

감당할 수 없이 내린 비가 거리에 쌓여 처치곤란이라면 내가 빗자루로 말끔하게 쓸어낼 테니! 

오호! 빗자루에도 비가 들어 있네!

어쩌면 빗자루의 쓰임 18293가지 중에서 비와 연관된 용도도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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