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이전에 조율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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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소리 내어 읽을거리를 찾는 건 소년의 일과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루 중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와 연관 있다고 소년은 믿어왔다.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면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눈을 뜨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며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고 있다면 분명 사랑에 빠진 사람일 것이다. 결국 반복되는 행위는 그를 그 습관과 가장 가까운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그 일로 밥 벌어먹을 것이고 그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소년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이 루틴을 지켜왔다. 목소리도 악기가 아닐까. 매일의 습도에 따라 기타 조율이 필요하듯 목소리도 매일 감정과 몸상태에 따라 변하기에 조율이 필요하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이야말로 목소리 조율이었다. 아침 신문기사를 분야별로 나눠 월요일에는 정치면, 화요일에는 경제면, 수요일에는 사회면 식으로 토요일까지 다르게 읽었다. 이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분야별로 특수한 발음들이 연습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경제면 기사에서는 숫자 읽기가, 스포츠면에서는 외래어나 외국 선수 이름들이 발음 연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읽을 때에도 어떠한 기교를 넣은 읽기가 아니었다. 그저 한 음의 건반을 스타카토로 연주하듯 한음 한음을 정확하게 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오늘 문화면 기사에서는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헤갈렸다.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고 새로운 문화 기획을 마련해야'에서 '밟지'의 발음이 '발찌'인지 '밥찌'인지 모호했다. 소년은 익숙한 발음으로 선택해 읽고는 녹음된 음성을 다시 복기하며 표준 발음 사전을 찾아보니 '밥:찌'로 나와 있어 형광펜으로 표시했다. 겹받침의 발음 내는 방법을 가나다순에 앞서는 자음을 대표음으로 발음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밟다'는 예외인 걸 깜빡 잊었던 것이다. 소년은 다소 불만이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 발을 밟는다면 '제 발을 밥:찌 마세요' 보다는 '제 발을 발찌 마세요'라고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은데, 언중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 표준 발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밟다'는 꼭 틀리지 않기로 발음 노트에 적으며 다짐했다. 반드시 연습은 녹음을 병행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온전히 듣지 못하게 신은 만들었으니. 왜곡된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로 오해하지 않으려면 기계를 통해 들어야 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옛날에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하고 시간을 보는데 서둘러 나가야 할 때가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