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May 24. 2023
부족한 마음이 창공일 거야.
글을 쓸쓰록 지면은 채워지고 마음 한편은 비워지잖아.
그것은 역설의 결핍.
여백의 환호 같아.
글을 쓰다가 이따금씩 하늘을 올려다 보네.
파랗다 못해 보랏빛으로 보일 때가 있어.
스스로 멱살을 잡고 흔들어 생긴 영혼의 멍 자욱.
그때 어떤 고요한 우울이 지나가곤 해.
잠시 후 도착한 번잡하고 수다스러운 단어 보따리에는 무수한 월척 같은 카오스가 있는데 여기서 손을 뻗어 문장을 낚는 거야. 손질되지 않은 신선한 활어의 언어들이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내 품에 안기더라.
너무 욕심내지 마.
오늘의 언어는 언제나 넘치니까.
내일을 걱정해서 잡아두는 건 어리석어.
적어도 글을 쓰는 일은 오늘의 언어를 매일 낚는 일이잖아.
나도 한때 언어가 잘 낚이는 날에는 냉동실에 넣어 둔 적이 있었어.
이내 깨달았다네.
물고기는 한 번 나간 출항에서 일주일 분량을 한 번에 잡아두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글쓰기는 매일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는 수고로움이 옳다는 것을.
인간에게 소중한 것들은 반복과 지속이더라.
미리 앞당겨 호흡할 수도 없고
오늘 배불리 먹는다고 내일도 든든하지 않잖아.
자주 허기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나를 살게 해.
사랑의 기억을 상기시키면 새삼 느낄 거야.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허기를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배고픈 자가 먹을 것을 찾아 담을 넘듯이 그와 사랑을 나누려 그의 마음의 담을 수도 없이 타 넘던 주책스런 그 마음을 글을 쓸 때마다 떠 올려보곤 해.
글은 담을 넘다 실패한 보고서.
내일의 담은 오늘의 그것과 다를 거라 믿는 거지.
어느 날에는 그 담벼락 앞에서 눈물도 흘리겠지.
취한 마음을 게워내고 내 한계에 화가 나 오줌을 갈기기도 할지도 모르고 장문의 연애편지를 담에 쓰는 날에는 담을 타고 그에게로 가는 담쟁이를 꿈꾸기도 할 거야.
오늘의 하늘은 글을 쓰기 참 좋은 날임을 예보하는 듯 해. 다행이야.
하늘은 빈 원고지 같아.
거기에 오늘의 초고를 쓰라고 내미는 것 같아.
누구나 공정하게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듯이 말이야.
창공에 쓸 거야.
그렇지 않다면 이 엄청난 창공을 어찌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