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May 26. 2023

기분 크로키

0348

주문한 음식에서 모래가 씹힌다고 말한 것이 하루를 통째로 뒤흔들 줄이야.

이미 이 식당에서 일어난 지난 이력들이 화려하다.

불고기전골에서 비닐이 나오기도 했고

고기를 굽다가 흐른 기름에 구두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이번에는 육회비빔밥을 먹다가 여러 차례 씹던 음식을 뱉어야 했다.

반찬으로 나온 얼갈이무침이 그 원인이었다는 것은 하나씩 반찬을 음미하면서 알아낸 사실이다.

어차피 거의 먹은 상태이고 배부른 터라 다시 음식을 바꾸기도 애매했다.

그저 계산을 마치고 혹시라도 식당에 피해될까 봐 다른 손님 귀를 피해 작은 목소리로

음식에서 모래가 씹혀요
아마도 얼갈이때문인 것 같아요


주인은 위생상태를 단단히 챙기겠다고 말하는 대신

지난번에도 불만을 말씀하셨던 분 맞죠?


라고 응대할 줄이야.

아.. 맞는데.. 그땐 엄연히 사장님도
눈으로 확인하셨던 거고
주방에서 실수한 거라고 인정하셨잖아요?
매번 손님이 이러시니
저희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환불해 줄 테니 다음부터 오지 마세요.


허걱.

이? 건? 뭐? 지?

얼갈이때문에 얼간이가 된 기분이다.

동행한 분이 화가 나서 사장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 손님에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를

블랙컨슈머로 몰아세우시는 거죠?
만약 그런 의도가 있다면
조용히 나와서 인터넷에 올리거나
계산하기 전에
따져서 문제를 일으켰겠죠.



모든 테이블의 시선이 하나로 주목되어 가방에서 뭐라도 물건을 꺼내 팔고 싶을 정도로 집중되었다.

이때의 구경하는 이들의 표정들은 재판관이 된다.

누가 옳은지 내가 잘 들어보고 판단해 주마.

예전처럼 목소리가 크다고 유리하지 않은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말의 내용을 본다.

논리적이어야 하고

발음도 정확해야 하고 (장단음까지는 구별하지 않는다)

욕의 분량도 적어야 하고 (인상착의를 보는 것도 같다. 외모도 중요한가)

무엇보다도 맥락과 사회적 통념에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소리가 커지는 순간 아름다운 마무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누구의 말도 틀리지 않고 누구의 말도 옳지 않은 단계가 되어야 끝이 난다.

그전에 나는 부당한 피해자임에도 링 위의 심판인 양 그들의 사이를 벌리고 있었다.

벌리면 모아지고

벌려 놓으면 다시 만나는

이상한 매스게임 같기도 하고

거대한 아코디언 같기도 하고

아무튼 각각의 억울함을 한아름씩 안고는 서로

두고 보자


는 지키지도 못할 애프터 신청을 구두로 약속하며 헤어졌다.

 

이런! 그 이후의 기분을 쓴다는 것이 그 때의 상황을 중계하고 말았다.

그 순간에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더니만 지금은 커피를 내리고 싶다.

이처럼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시간들을 살고 있다.

식당에 갈 때에도

글을 쓸 때에도

지금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