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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27. 2023

아버지 생각

0349

여덟 시간을 달려 당신에게로 갑니다.

짧은 연도와 두 번의 절을 올리기 위하여.

벌써 네 번째입니다.

여전히 꿈에서는 웃고 계십니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눈을 감아야 당신은 비로소 보입니다.

부처님이 오시던 날에 당신은 가셨습니다.

법명이 아닌 마르첼리노라는 세례명으로 당신은 팔십도 채우지 못하고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던가요?

매년 새해 아침이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가득히 채우시던 청년 같던 당신이 아니셨던가요?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울면서 빗물인 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존재자체가 거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도 사랑을 납득하게 한 이는 제게는 당신이 유일합니다.

당신이 떠난 후 사 년 동안 곱씹고 되새김질해도 낡아 없어지지 않을 사랑을 제게 심어놓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게 더 짙어질 수 있으신가요?

어찌하여 더 명징해질 수 있나요?

허공으로 휘저어 당신을 촉각 하려고 하루를 허우적거렸습니다.

한 문장 아니 한 말씀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여전히 생전에서처럼 말을 물건처럼 아끼십니다.

한 번은 당신을 기억하다가 시를 읊어보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0ozR9Ut3S_U


시가 노래가 되어

시가 주문이 되어

메아리로 내게 돌아오는 새의 겨드랑이에 쪽지라고 끼워 보내주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새들은 간지럼을 잘 타서 실패했을 겁니다.


불쑥

오늘은 당신의 얼굴보다 그 노쇠하고 살며시 굽은 등짝이 보고 싶습니다.

거기에 살포시 내 볼을 기대어 당신의 옅은 숨소리와 엷은 체온을 느껴보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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