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Jun 10. 2023

감동합니다

0363

감동합니다


통화 중에 이 말이 불쑥 나와 놀랐다.

문어체에는 이상하지 않은 표현이 구어체에서는 어색한 우리말 표현들이 있다.

이때에는 감동을 행위로 보지 않고 상태로 놓아야 옳은데 그만 룰을 어기고 말았다.

상태를 넘어서는 마음의 요동을 곱게 억누르지 못한 탓이다.

그 당시 마음은 '감사합니다'와 '사랑합니다'였나 보다. '감랑합니다'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좋을 텐데.


그는 내게 귀하고 어려운 분이다.

엄격하면서도 다정하시다.

문학계의 원로이시고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시인이다.

그에게 이른 아침 전화해 안부를 묻고는 불쑥 나의 신간을 소개한다.

예상보다 더 즐거워하고 기뻐하신다.

마치 그 일은 옳고 그래야 한다는 듯이.

그 응대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출간 전 선생님께서 읽어주신다면 행복할 거 같습니다.
소설은 잘 모르는데... 어서 보내보게.. 읽어보겠네.

그 촘촘한 활자를 담은 1000장 가까이 되는 원고지 더미를 안겨 드리자니 이내 죄송해진다.

겸손한 그 말씀에 추천사는 언감생심이고 일독만 해주셔도 감사하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선다.


감동은 늘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생겨난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피어나고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온다.

감동이 있어야 노래가 노래이고 그림이 그림이고 삶이 삶이다.

글쓰기도 그러하다.

감동이 필요하다.

몰랐던 것을 알게 하는 감동

잊었던 것들을 다시 들추어 느끼게 하는 감동

우리는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고 깨닫게 하는 감동

나를 더욱 나이게 하는 감동

나를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감동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감동

부족하지만 나의 껍질을 벗어내려는 의지의 감동

막막한 앞날 같은 단어들을 붙잡고 어찌어찌 이어가 보려는 감동

나와 읽는 이를 살리는 감동

상대의 뒤통수를 단장해 주는 배려의 감동

글이 아니라면 전하지 못할 감동들을 헤아려 본다.

말로 전하는 감동과는 다른 글쓰기를 통한 감동들을 쓰고 나서 조용히 외쳐본다.

오늘도 글로 인해 감동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랙티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