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n 11. 2023
현대인들의 풍족함에 대한 불만족은 결핍의 결여에 있다.
너무 가졌기에 더 가지고 싶어 진다.
너무 가졌던 까닭에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소유의 종말은 있으나 소유에 대한 욕망의 끝은 없다.
지금 내리는 비는 이를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부질없는 소유의 참담함을 불식시키려 한다.
소유의 능력을 부추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비와 천둥은 호통치고 있는 것이다.
없어 보인다
나는 이 말을 기꺼이 달가워한다.
누구나가 이 말을 듣는 순간 충분했으리라 안심했던 처지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는 이내 '있어 보이게' 급히 탈바꿈을 시도하거나 노여움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가만히 음미해 본다.
없어 보이는 것은 결핍의 현현顯現이다.
이는 타인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소박한 '있어 보임'에 손을 들어준다.
결핍의 장점은 그 너머에 있다.
결핍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영양소라든가 사랑과 같은 것의 결핍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에 학습된 까닭이다.
결핍은 한계를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다.
사랑을 잃고 시를 쓰기도 한다.
공간을 극복하려 건축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언어의 결핍이 문장을 단련시킨다.
글쓰기는 온전하게 결핍해 본 자만의 특권이다.
결핍 자체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다.
그것을 곱씹고 음미할 때 결핍의 영양가가 드러난다.
결핍의 역동성을 되찾을 시간이다.
결핍이 순기능으로 작동하는 순간 행복으로 연동된다.
결핍은 한국화의 여백처럼 능동적 자기표현이 된다.
결핍의 참맛을 알게 되면 충족이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뒷맛이 개운치 않음을 알게 된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나를 성장시킨 변곡점에는 결핍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지 않았는가.
인류는 충족한 순간 멸망했고 결핍이 결여되는 순간 퇴화되었다.
결핍이 가난을 향해 걸어가라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편리함으로 필요한 결핍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소소한 물질의 결핍을 채우느라 급급해 생각의 결핍이라는 소중한 부분을 놓칠까 두렵다.
모자라는 것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결핍의 예술적 효과는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