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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30. 2023

고통의 향기

0444

모든 고통은 향기를 품고 있다.

때로는 냄새처럼 코를 찌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결국에는 향기를 던지고 떠난다.

예측할 수 없는 고통.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

나만이 오롯이 맛보는 고통.

누가 대신 할 수 없는 고통.

상대적인 고통.

준비하는 고통.

고통 앞에 무력해지고 작아지고 어쩌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지라도 막상 고통을 마주하면 전사가 되기도 하고 성인이 되기도 한다.

고통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교만하고 뻔뻔해졌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가장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것을 지우고 저곳으로 건너갈 수 없으니 고통은 필연이자 숙명이다.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우둔하고 소홀했던 과거인가.

치열한 사투의 현장인 현재인가.

어서 지나가고 맞이할 미래인가.

삶은 안락한 길만 펼쳐 주지 않듯이 고통스러운 길을 오래가도록 방치하지도 않는다.

마치 긴 도로에서 만나는 터널 같은 시간이다.

막막하지만 약간의 커브를 돌면 점처럼 출구가 이내 나타나 기다린다.

먹구름 너머의 해처럼 화사하게 반긴다.

그렇게 시간을 견디면서 고통은 향기를 생산한다.

쓰디쓴 생강에서 우러나오는 알싸한 단내처럼 곱씹을 향기가 고통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밀고 온 자에게 주어진다.

고통은 공간보다 시간에 솔직하다.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시간 속에서 희석되는 건 흔하다.

고통의 순간이 물리적인 시간을 거스르니 이것이 난관이지만 관념에서 시간을 흐트러뜨리면 고통의 질이 달라질 수는 있다.

어차피 주어진 고통이라면 의연한 태도가 값지다.

정면으로 대면하는 모든 것들은 응시하는 자에게 겁을 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라는 괴물일지라도...


아무튼 고통은 다녀가면서 그냥 가는 법이 없다.

정이 있어서도 아니고 뒤끝이 있어서도 아니다.

나를 관통하며 나를 스캔한 데이터를 건네줄 뿐이다.

똑바로 살지 않으면 정신차리지 않으면 아니다 불시에 부지불식간에 다시 오겠다는 추신을 꼭 단다. 이는 누구에게나 공통되게 고하는 고통의 오래된 버릇이다.


나는 오늘의 고통이 전할 복잡한 향기들을 온몸으로 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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